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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나’에게 머리 맡겼다가 ...

중앙선데이 2011.10.16 01:55 240호 10면 지면보기
그것은 마치 춤을 청하는 댄서의 인사처럼 보였다. 그는 빗을 잡은 양손을 눈높이에 맞춰 올린 다음 오른쪽 발을 뒤로 살짝 빼면서 무릎을 굽혀 인사한다. 지난 금요일 나는 미용실에 갔다. 짧은 데다 숱도 거의 없는 머리를 갖고 무슨 미용실이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이런 머리일수록 조금만 자라도 금세 지저분해 보이는 법이라 한 달에 한 번은 미용실에 가야 한다.

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

원래 내 머리를 잘라주던 헤어 디자이너는 그 사이 다른 미용실로 갔다고 한다. 나는 아무나 괜찮으니 바로 잘라줄 수 있는 분으로 부탁했다. 잠시 대기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던 내 옆으로 ‘아무나’가 와 앉는다. 잘생긴 남자 헤어 디자이너다. 헤어 디자이너에겐 남의 머리를 주인의 동의 없이 만질 수 있는 권리라도 있는 걸까? 그는 만질 것도 없는 내 머리를 이리저리 만지며 묻는다. “어떤 스타일로 자를까요?” “뭐 딱히 스타일 같은 건 없는데요. 그냥 다듬는 정도로….” “알겠습니다. 짧지 않게 스타일리시하고 깔끔하게 살짝 정리해 드릴 게요.” 그때는 몰랐다. 그가 얼마나 리듬을 타는 사람인지를.

미용실 가운을 입고 가벼운 샴푸를 마친 다음 거울 앞 의자에 앉아 목에 붕대를 감고 유치원 아이들 원복 같은 걸 두른 차림으로 나는 그가 오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그가 등장했다. 쇼를 시작하려는 댄서처럼. 그는 정식으로 자기소개와 인사를 한다. 그것은 춤이었다. 가위를 꺼낼 때, 마치 서부의 총잡이가 권총을 돌리듯 가위를 몇 바퀴 돌릴 때, 가위를 움직여 머리카락을 자를 때,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움직일 때, 다가오고 물러날 때, 그는 리듬을 탄다. 들리지는 않지만 그의 주위를 감싸고 흐르는 음악이 보인다. 그의 몸짓에는 고저와 장단이 있고 강약과 완급이 있다. 마치 탱고를 추는 댄서처럼 절도 있고 격정적이다.

어느 정도 머리를 자르면 그는 잠시 물러나 내 머리통을 노려본다. 내가 보기엔 괜찮은 것 같은데 그는 뭔가 불만스러운 눈치다. 왼손에는 빗을, 오른손에는 가위를 들고 내 머리통을 노려보는 그의 모습은 투우사 같다. 나는 숨을 헐떡이며 피를 흘리는 소 같고. 투우사는 내 머리통을 찌를 듯이 가위를 세워서 뾰족한 끝으로 머리를 자른다. 그는 쉽게 만족하지 않는다. 머리를 자르고 물러나 노려보고 다시 자른다. 어쨌든 그의 춤은 점점 클라이맥스를 향해 치닫는다.

드디어 끝났다. 그는 스펀지를 부채처럼 내 얼굴 앞에서 흔든다. 얼굴에 붙은 머리카락을 떼어내려는 것이다. 그 동작마저도 우아한 춤이다. 새끼손가락에도 각이 살아있다.
“손님, 다 끝났습니다. 어때요? 마음에 드십니까?” 대답 대신 나는 궁금한 것을 묻는다. “혹시 무용하셨어요?” “아뇨, 리듬을 타면서 일하면 일도 즐겁고 머리 스타일도 잘 나오거든요. 보시기 민망했나요?”

아니다. 잘생긴 남자가 춤을 추듯 머리를 잘라주는 것을 보는 것은 전혀 민망하지 않다. 보기 좋았다. 민망한 것은 그가 춤을 추며 잘라버린 내 머리통을 보는 일이다. 그는 리듬을 타도 너무 탔다. 다듬는 선에서 정리하기로 한 머리를 아예 스님 머리 스타일로 만들어 놓았다. 헤어 디자이너도 조금 민망했는지 이렇게 말한다. “머리가 짧으니까 훨씬 스타일리시합니다.”



김상득씨는 부부의 일상을 소재로 『아내를 탐하다』를 썼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에서 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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