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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한 비전 제시한 잡스는 ‘현명한 독재자’

중앙선데이 2011.10.16 01:38 240호 5면 지면보기
지난주 미국, 아니 세계 최고의 뉴스는 스티브 잡스의 죽음이었다. 마침 그가 살던 집이 내가 사는 곳과 매우 가까운 터라, 현장에서 느끼는 애도의 열기는 실로 대단했다. 2년 전 마이클 잭슨의 사망 당시와 비교해 전혀 뒤지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이다. 심지어 오바마 대통령은 “세계는 한 명의 ‘선지자(visionary)’를 잃었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김수경의 시시콜콜 미국문화 : 잡스의 팰러앨토 자택에서

그의 집을 찾았다. 이미 수많은 사람이 집을 에워싸고 있었다. 집 앞에는 수백 개의 꽃다발과 감사카드, 불을 켠 양초, 한 입 베어 먹은 사과(그가 경영했던 애플사의 로고) 등이 놓여 있었다. 전 세계 미디어는 추도의 글로 넘쳐난다. 다들 잡스가 인류에 불어넣은 ‘영감(inspiration)’을 칭송하고, 그가 사라진 세상은 더 이상 예전처럼 흥미롭지 않을 것이라고 개탄했다.

가히 ‘신드롬’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엄청난 이 애도의 물결은 분명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부분이 있다. 일단 그는 교황과 같은 성인(聖人)도, 아인슈타인과 같은 위대한 과학자도 아니다. 단순히 보자면 그저 한 회사의 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일 뿐이다. 그럼에도 일단 애도의 ‘스케일’이 범세계적이며 추도의 내용 역시 그가 실천한 혁신의 ‘가치’에 대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렇듯 과잉 추도 열기를 조심스럽게 비판하기도 한다. 영국의 일간지 데일리메일은 “하루 종일 컴퓨터나 휴대전화를 붙들고 사는 사람들에겐 잡스가 지구상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는 명석한 사람이었지만 아인슈타인은 아니었다”고 논평했다. 한 인터넷 언론은 애플사의 제품이 중국 어린이들의 노동력을 착취해 만들어진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미국의 월간지 더애틀랜틱은 “애플사가 성인에 의해 설립된 것은 아니다”라며 그에 대한 에피소드 하나를 전했다. 애플사의 엔지니어들이 아이팟(iPod)을 개발해 잡스에게 가져갔다. 잡스는 요리조리 만져보더니 더 작게 만들라고 했다. 엔지니어들이 “기술적으로 더 작게 만들 수는 없다”고 하자 그는 사무실에 있던 어항 속에 아이팟을 넣었다. 기포가 올라오자 그가 말했다. “이 공기방울만큼의 공간이 제품 안에 있다는 증거다. 더 작게.”

요지는 잡스가 아주 우수한 두뇌를 지닌, 게다가 추진력까지 갖춘 유능한 기업가이긴 하지만 인류 평화를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친 성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같은 날 미국 흑인인권 운동의 대표적 지도자인 프레드 셔틀스워스 목사가 사망했지만 그의 죽음은 언론에서 크게 다뤄지지 않았다.

결국 잡스의 죽음을 둘러싼 추도 열기는 이 시대가 갈구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시사한다. 현재 사람들이 목말라하는 것은 미담이나 선행이라기보다는, 다소 독불장군 같더라도 분명한 비전을 제시하는 리더십이다. 선행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됐기 때문이 아니다. 잡스가 선지자로까지 추앙받는 현상 속에서 현대인들의 불안을 읽었다면 너무 과한 해석일까. 진정으로 이 시대가 원하는 것은 어쩌면 ‘현명한 독재자’인지도 모르겠다.



김수경씨는 일간지 기자로 근무하다 현재 미국 샌프란시스코 인근에서 유학하고 있다.대중문화 전반에 폭넓은 관심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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