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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인민대회당에 내걸린 쑨원 초상화

중앙일보 2011.10.12 00:25 종합 10면 지면보기






정용환
홍콩 특파원




지난 9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 중앙 벽면에 혁명 지도자 쑨원(孫文)의 대형 초상화가 걸렸다. 이 벽면은 공산당 지도부가 모두 참석하는 회의의 규모와 성격에 따라 중국 공산당 당기나 휘장이 걸려왔다. 이날은 신해(辛亥)혁명 100주년 기념 대회의 성격에 맞춰 공산당의 상징이 걸리던 자리에 쑨원의 초상화가 내걸린 것이다.



 후진타오(胡錦濤·호금도) 중국 국가주석은 이날 “중국 공산당은 신해혁명의 과제를 완수한 계승자”라며 “쑨원의 이상인 중화민족의 부흥을 공산당이 이끌었다”고 강조했다. 후 주석은 양안(중국·대만)의 정신적 통합을 위한 첫걸음으로 신해혁명을 출발점으로 삼은 것이다.









본지 10월 11일자 2, 3면 사진.



 중국은 그간 신중국 건국일인 10월 1일을 국경절로 삼아 해마다 성대하게 치러왔다.



반면 대만에선 신해혁명이 발발한 10월 10일을 중화민국 건국일로 삼아 경축 행사를 열었다. 국·공 내전에 패해 대만으로 쫓긴 국민당 정부는 신해혁명을 기념하면서 중화민국을 계승했다는 정통성을 강조해왔다.



 중국 공산당이 중화민족 부흥을 매개로 신해혁명과 신중국을 한줄기로 엮으면서 중국과 대만 사이에 불꽃 튀는 ‘역사전쟁’이 가열되고 있다. 중국 정부의 대대적 지원을 업고 올여름 개봉한 공산당 찬양 영화 ‘건당위업(建黨偉業)’에서 공산당 창당의 뿌리를 신해혁명에서 찾는 시각을 드러내자 대만에선 반발이 잇따랐다.



신해혁명과 쑨원에 대한 공산당의 적극적 구애에 대해 대만 마잉주(馬英九·마영구) 총통은 “중국은 역사를 직시하라”며 한 치도 양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수천 년간 이어진 중국의 왕조체제를 붕괴시킨 신해혁명의 원동력은 제국주의의 침탈과 민족적 굴욕을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는 애국정신이었다. 세계 2위의 경제 규모를 배경으로 G2(미국·중국)로 발돋움한 공산당은 ‘경제 발전’을 통해 신해혁명의 이상을 현실에 구현했다는 자부심을 과시한다. 대만은 쑨원의 삼민주의(민족·민권·민생) 정신을 ‘자유민주체제’로 꽃피웠다고 확신한다. 신해혁명을 둘러싼 양안의 역사전쟁은 민족 통합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정통성 경쟁의 성격을 띤다.



 대만은 중국이 신해혁명을 품에 안으려면 바로 그 혁명을 통해 탄생한 중화민국을 인정하라고 압박한다. 신해혁명과 공산당을 한 뿌리로 인식하게 되면 아시아의 첫 공화제 국가인 중화민국 문제를 에둘러 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대만과 신해혁명의 적자 경쟁을 벌이게 된 중국의 앞길에는 정치 개혁과 다양하게 분출하는 당 내외 민주화에 대한 요구가 기다리고 있다.



정용환 홍콩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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