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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꼼수국 지존의 기상천외한 신공 앞에 다들 입을 다물지 못했으니 …

중앙일보 2011.10.12 00:25 종합 39면 지면보기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꼼수로 날이 밝고, 꼼수로 해가 지는 꼼수의 나라. 꼼수국의 지존(至尊)이 며칠 전 듣도 보도 못한 신공(神功)을 선보였다. ‘원로우회(遠路迂廻)’ 신공, 일명 내곡동 신공이다. 가까운 길 놔두고 일부러 먼 길 돌아가는 이 신공은 전에 그가 선보였던 도곡동 신공이나 BBK 신공, 다스 신공과는 차원이 달랐다. 누구도 그 깊이를 헤아리지 못했다. 다들 한 꼼수씩 한다는 꼼수국 사람들이지만 지존의 내공 앞에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졸도하는 사람이 생길까 염려한 지존 스스로 이틀 만에 거둬들이긴 했지만 그 속에 또 무슨 꼼수가 감춰져 있을지…. 그런 지존에게도 고민이 있으니 갈수록 걷기가 불편해지는 ‘절름발이 오리 증후군’이다. 죽기보다 싫지만 지존은 의사를 찾아갔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지존:검사 결과 나왔습니까.



 의사:나쁜 소식을 알려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퇴행성 관절염 3기로 나왔습니다. 증상으로는 먼저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고….



 지존:거참 이상하네요. 조금 전 선생도 머리가 아프다고 인상을 쓰던데, 그건 왜 퇴행성 관절염이라고 하지 않는 거요.



 의사:제 두통하고 환자분 두통은 다릅니다.



 지존:뭐가 다르다는 거요. 의사 선생 머리는 무슨 금덩어리로 돼 있기라도 하단 말이오.



 의사: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죠. 그리고 보행이 힘들어 뒤뚱뒤뚱 걷게 되고….



 지존:선생이야말로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의사라고 그렇게 함부로 말을 해서야 쓰나. 오리도 뒤뚱뒤뚱 걸으니 퇴행성 관절염이란 소리 아니오.



 의사:힘이 빠져 드러눕고 싶은 것도 증상 가운데 하나입니다.



 지존:동네 찜질방에 가면 누워 있는 사람 천지더군. 그 사람들도 모두 퇴행성 관절염 3기겠군…. 좋아. 백번 양보해 퇴행성 관절염이라 치지. 그것도 7, 8기라고 해. 그게 도대체 무슨 문제지. 다른 사람들한테는 그런 병이 없나. 왜 나만 가지고 난리야. 낼모레면 칠순인데 축하는 못 해 줄망정 왜 나를 공격하는 거야. 나하고 무슨 원수라도 졌어.



 의사:그건 오해입니다. 저는 그저….



 지존:오해는 무슨 오해. 나는 첫눈에 당신을 알아봤어. 남 잘 되는 것은 못 봐주겠다는 심보잖아. 당신은 힘 있고, 돈 있는 사람들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 차 있어. 그래서 위장 전입, 병역 기피, 논문 표절, 세금 탈루, 편법 증여같이 꼼수 축에도 못 끼는 꼼수를 쓰는 사람들한테까지 다 퇴행성 관절염 딱지를 붙이는 것 아냐. 부끄러운 줄 알아, 이 돌팔이야.



 의사:제 진단은 과학적 검사 결과에 근거한 것입니다. 제가 괜한 헛소리를 하는 게 아닙니다. 이대로 가면 칠순 잔치는 고사하고, 그전에 들것이나 휠체어에 실려 요양원으로 갈 수 있단 말입니다….



 *두 사람의 대화는 보양(柏楊) 선생이 쓴 『추악한 중국인』의 일부를 패러디한 꼼수임을 밝혀 둠.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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