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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청춘은 맨발이다 (121) 트로이카+1

중앙일보 2011.10.12 00:02 종합 31면 지면보기



다른 촬영 늦다며 가겠다는 정윤희, 뺨을 한대 쳤다



신성일·장미희 주연의 영화 ‘속 별들의 고향’(1978). 장미희는 정윤희·유지인과 함께 1970년대 2세대 트로이카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중앙포토]





1970년대 중반 새로운 트로이카가 등장했다. 여배우의 세대교체였다. 60년대를 풍미하던 문희·남정임·윤정희 ‘1세대 트로이카’는 사실상 퇴진했다. 문희와 남정임은 결혼과 함께 영화계를 떠났고, 윤정희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장미희·정윤희·유지인이 ‘2세대 트로이카’를 형성했다.



 2세대 트로이카 중 내가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은 장미희다. 77년 ‘겨울 여자’, 78년 ‘속(續) 별들의 고향’에서 연속 흥행에 성공했다. 장미희는 다른 여배우에 비해 얼굴이 둥글 넙적한 편이었다. ‘겨울 여자’ 때부터 “빈대떡 같이 생긴 아이가 어떻게 주인공 하냐”고 장난 삼아 놀렸다. 장미희는 그 말을 노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마음가짐이 보통이 아닌, 야무진 처녀였다.



 장미희의 어머니도 유명했다. 다른 여배우의 어머니도 대체로 극성스러웠지만 장미희 어머니는 좀 더 했다. 차와 운전기사를 두고 딸의 일거수일투족을 관리했다. 먹거리를 잘 챙겨 스태프와 감독들이 좋아했다. 영화 제작부는 밑바닥에서 커온 사람들이다. 그 속에 딸을 넣어둔 부모는 강박관념에 가까운 보호의식을 갖게 된다. 그런 면에서 장미희 어머니를 이해했다. 장미희는 어느 순간 어머니와 거리를 두기 시작해 자연스럽게 홀로서기를 했다.



 77년 임권택 감독의 ‘임진왜란과 계월향’에서 정윤희와 만났다. 촬영이 다소 지체된 어느 날이었다. 한 신만 더 찍으면 세트를 허물고 다음 장면으로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다른 영화사 제작부장이 정윤희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윤희는 시간이 늦었으니 다른 곳으로 가겠다고 말했다. 그 장면을 못 찍으면 영화사는 망할 판이었다.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제작부장이 정윤희에게 손찌검을 하려 했다. 내가 먼저 정윤희의 뺨을 한 대 때렸다.



 돌이켜 생각하면, 참으로 미안한 일이다. 만약 제작부장이 손찌검을 했더라면 큰 사건이 됐을 것이다. 결국 정윤희는 남은 장면을 찍고 촬영장을 떠났다. 그 후 정윤희와 ‘도시의 사냥꾼’ ‘가을비 우산 속에’(1979년) 등을 함께했다.



 정윤희는 얼굴과 몸매가 빈틈없이 균형 잡힌 미인형이다. 이민자·김혜정에 이어 볼륨 있는 몸매의 연기자 계보를 이었다. 그런 장점을 파악한 정진우 감독이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등 정윤희와 많은 작품을 했다.



 유지인은 몸이 일자형이지만 얼굴 모양이 현대적이다. 지성미를 가진 여배우다. 아버지가 해병대 대령 출신이어서 무척 엄격했다. 촬영장에는 언니가 따라다녔다. 내 지인이 유지인을 흠모했다. 나는 그 사람과 유지인이 한 번 만날 수 있도록 언니에게 부탁했다. 언니는 아버지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유지인의 아버지는 내가 부탁을 했다는 말을 듣고 허락을 했다. 그 사람과 유지인은 성사되지 않았다.



 2세대 트로이카에 포함되기도 했던 또 다른 여배우가 김자옥이다. 여인의 향기를 가진 여배우다. 남자의 보호본능을 일깨운다. 어떤 남자라도 한 번쯤은 김자옥과 같은 여인과 사랑하고 싶을 것이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김기덕 감독 회고전’ 출품작 중 네 편이 내가 주연한 작품이다. 영화들을 보니 내가 상대한 여배우들은 너무나 예뻤다. 그들과 함께했다는 것만으로도 다시금 행복해졌다.



정리=장상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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