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방과후 교육] 서울 상상학교의 무용 수업

중앙일보 2011.10.05 03:22 Week& 6면 지면보기
지난 9월 29일 서울 강서 청소년 회관 연습실.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가 흘렀다. 등에 흰 날개를 단 청소년들이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였다. 피아노 선율로 시작한 음악은 가야금 가락으로, 리드미컬한 재즈로, 비트가 강한 힙합 버전으로 변했다. 연습실을 누비는 학생들은 때로는 강하게, 때로는 부드럽게 팔과 다리를 접었다 폈다. 힘의 완급 조절이 제법이었다. 바닥을 구르고 5번 이상 도는 턴과 텀블링도 선보였다. 학생들의 열기가 연습실을 달궜다. 이들은 청소년 방과후 문화예술 교육 프로그램 ‘상상학교’에 참여하는 학생들이다.


석 달 전에 눈도 마주치지 않던 아이들
함께 춤추며 서로 웃기 시작했다







상상학교 참여 학생들이 9일 오르기로 한 호암아트홀 서울세계무용축제 무대에서 끼와 재능을 마음껏 펼치기 위해 연습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학생들은 여기서 컨템퍼러리 재즈를 비롯한 현대무용과 한국무용을 전문가처럼 소화해낸다. [최명헌 기자]







상상학교는 문화체육관광부와 여성가족부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과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이 주관하는 청소년 방과후 문화예술 교육 지원 사업의 일환이다. 지난 4월에 시작해 12월까지 이어지며 서울과 인천·대전·경기도에서 각각 무용·연극·음악·국악뮤지컬 교육이 진행된다. 참여 학생 가운데 70%는 생활보호대상자·차상위 계층·한 부모 가정 자녀 등 사회적 배려 대상자다.



서울에서는 무용 교육이 이뤄진다. 서울 시내 10개 청소년 회관에서 130명의 청소년이 참여하고 있다. 강서 청소년 회관에는 초5부터 중2까지 12명의 청소년이 모여 있다. 이들은 상상학교에서 실력을 갈고 닦아 9일 서울 호암아트홀에서 펼쳐지는 서울세계무용축제 무대에도 오른다. 상상학교 10개 팀이 모두 다른 주제로 개성을 드러낼 예정이다. 강서 청소년 회관 팀은 이날 무용축제의 피날레 무대를 장식한다.



공연할 작품의 주제는 팀원 12명이 정했다. 팀원 가운데 누군가 낸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왕따를 소재로 하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여기에 ‘미운 오리 새끼’ 내용을 차용했다. 날개가 없는 백조는 다른 백조들에게 왕따를 당하지만 ‘하늘을 날겠다’는 같은 꿈으로 다른 백조들과 하나가 된다는 내용이다. 춤을 출 때는 각자 맡은 백조의 입장에서 감정을 표현한다. 그래서 군무(群舞) 때도 학생마다 조금씩 몸짓이 다르다. 김민희(서울 방화초 6)양은 “음악이 시작되면 꿈을 향해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는 한 마리 백조로 변한다”며 “친구들이 표현하는 백조의 모습이 다 달랐던 점이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이곳에서 한국무용, 현대무용과 함께 커뮤니티 댄스를 배운다. 국내에는 아직 생소한 커뮤니티 댄스는 함께 춤추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춤이다. 해외에서는 새로운 무용 교육의 흐름으로 떠오르고 있다. 등을 맞대고 서로에게 기대보거나 친구와 손을 잡고 포옹하면서 몸으로 대화하는 법을 배운다. 함께 모여 춤을 추면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한다. 구명진(서울 방화초 6)양은 “똑같이 ‘슬픔’이라는 단어를 몸으로 표현한 적이 있었다”며 “친구들의 춤을 보면서 사람마다 슬픔의 모양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상상학교에 참여한 지 3개월. 춤은 아이들을 변하게 했다. ‘나’를 표현하는 가운데 자신감이 생기고 친구들과 함께하면서 성격도 밝아졌다. 강사들 사이에서 ‘신동’으로 불리는 김상현(서울 방화초 6)군의 춤사위는 단연 돋보였다. 김군은 처음 이곳에 왔을 때만 해도 미술치료를 받을 정도로 심리적으로 불안했다. 주변 상황에 예민하게 반응하던 김군은 춤에서 재능을 발견하면서 눈에 띄게 성격이 밝아지고 부드러워졌다. “춤을 출 때 정말 행복하다”는 김군은 “내게도 목표가 생겼다”며 “앞으로 고요하고 차분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한국무용을 공부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처음 모였을 때는 말도 잘 섞지 못하던 학생들은 이제 가족과 다름없다. 커뮤니티 댄스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김가영(서울 개화초 5)양은 “친구·언니·오빠들과 한데 어울려서 대화하며 춤을 추니 좋다”며 “소심하고 말이 없던 내가 웃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고 말했다. “걸 그룹의 춤을 따라 추는 방송 댄스를 배웠다면 달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예술 강사 송경숙(35)씨는 “가정 형편 탓에 주눅 들고 어두웠던 학생들이 크게 변했다”며 “춤으로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고 사람 사귀는 법을 알게 되면서 학생들이 확실히 밝아졌다”고 말했다.



9일 공연을 앞둔 학생들의 마음은 기대로 가득차 있다. 박소민(서울 개화초 5)양은 “큰 무대를 앞두고 많이 떨린다”며 “날개 없는 백조가 하늘을 날려고 몸부림치듯이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꿈을 향해 달리는 힘찬 내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글=설승은 기자

사진=최명헌 기자



◆커뮤니티 댄스= 서유럽에서 발달했으며 새로운 무용의 흐름으로 세계 전역에 확대되고 있다. 사람들 사이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고 관계 회복을 통해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신체 접촉이 많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는 소통이 주를 이룬다. 관계 형성을 통해 공동체 간의 유대감을 높여준다. 커뮤니티 댄스는 남미 콜롬비아에서 마약과 범죄에 찌든 청소년들의 삶을 바꾸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국내에는 아직 생소하지만 지난해 11월 한국예술종합학교가 커뮤니티 댄스에 관한 심포지엄을 열고 지난 4월에는 한국 국제무용협회가 핀란드에서 전문가를 초청해 워크숍을 여는 등 본격적인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