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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복의 세상읽기] 국빈방문의 정치경제학

중앙일보 2011.10.05 00:28 종합 33면 지면보기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워싱턴 국빈방문은 미국 대통령이 외국 정상에게 베푸는 최고의 외교적 의례(儀禮)다. 하고 싶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로비를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백악관의 고위급 외교자문관들과 비서실장, 국무장관이 대상자를 엄선해 추천한다. 국가안보회의(NSC)는 국빈방문이 양국관계에 미칠 영향을 면밀히 분석한다. 이를 종합해 백악관 주인이 직접 결정하는 것이 국빈방문이다. 대단히 정치적인 행사일 수밖에 없다(포린폴리시, 2010년 3월 30일자). 2009년 1월 취임 이후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국빈으로 초청한 사람은 만모한 싱 인도 총리, 펠리페 칼데론 멕시코 대통령,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 4명뿐이다.



 국빈방문의 하이라이트는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개최되는 국빈만찬이다. 검정색 또는 흰색 보타이 정장 차림의 미 대통령과 드레스를 차려 입은 영부인이 약 300명의 손님을 일일이 영접한다. 초대받은 손님 명단과 만찬 메뉴, 영부인의 의상은 워싱턴 사교계와 패션계의 1급 관심거리다. 싱 총리 국빈만찬 때 미셸 오바마는 인도계 미국인 내엠 칸이 디자인한 황금색 민소매 롱드레스를 입었다. 후 주석을 접대할 때는 붉은 기운이 감도는 화려한 실크 가운을 입었다. 국빈만찬 한 번 준비하는 데 보통 50만 달러(약 6억원)가 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갈수록 백악관 국빈만찬이 드물어지는 것은 돈 때문이란 얘기가 있다.



 





일러스트=강일구 기자 ilgoo@joongang.co.kr






이명박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이 주는 다섯 번째 국빈방문 티켓의 주인공이 됐다.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1998년 김대중 대통령에 이어 13년 만이다. 이 대통령은 13일 오전 백악관 사우스론에서 거행되는 공식 환영행사로 국빈방문 일정을 시작한다. 의장대를 사열하고, 21발의 예포가 발사된다. 백악관 행사와 별도로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연설하는 것도 국빈방문의 통상적 프로토콜 가운데 하나다.



 김성환 외교부 장관은 외교부 출입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이 대통령의 국빈방문은 미국 측 요청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안 해도 좋을 설명을 했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미국 쪽에서 먼저 강력히 요청하는 바람에 되레 우리가 의아해 했다는 것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그 배경으로 두 정상의 개인적 친분을 우선 꼽았다. 다섯 번의 정상회담을 거치면서 오바마 대통령이 이 대통령을 존경하고 신뢰하게 됐다는 것이다. 자신의 노력과 의지로 출신 배경의 한계를 극복하고 자수성가한 인생 역정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는 것이다. 기회 있을 때마다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의 교육열과 교육 제도에 대해 언급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동아시아가 갈수록 중요해지는 상황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이 대통령을 진지한 대화 파트너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은 그가 꼽은 또 다른 이유다. 후 주석의 올 1월 국빈방문 때 오바마 대통령은 허심탄회한 대화를 기대했지만 후 주석은 준비된 발언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이를 보고 크게 실망했다는 것이다. 1년마다 바뀌는 일본 총리를 대화 상대로 삼기도 어렵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중국이 부상하는 가운데 오키나와 미군 기지 이전 문제 등으로 미·일 관계가 불안정해지면서 한국의 전략적 중요성이 부각되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대미외교에 깊숙이 관여했던 전직 고위 인사는 이 대통령을 초청한 타이밍에 주목하고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의 미 의회 통과 예상 시점에 맞춰 이 대통령을 국빈으로 초청함으로써 한·미 간 정치·군사적 유대와 경제적 결속을 공고히 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이번 기회에 한국을 미국에 단단히 묶어 두려는 전략적 의도가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이 외교적으로 최상급 예우를 할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봐야 한다”며 “십중팔구 청구서가 날아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 측 요구로 재협상을 거쳐 마련된 한·미 FTA 문안에 이미 청구서가 포함돼 있을 수도 있고,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이나 미군기지 이전 비용, 첨단무기 구입 등에서 우리 측의 부담 증가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이 국가부채 감축을 위해 향후 10년간 1조 달러의 국방예산을 줄이기로 한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힘겨운 줄타기를 하고 있다. 한·미 동맹은 우리의 자산이지만 중국이 부상하면서 점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미 천안함과 연평도 사태에서 비싼 대가를 치렀다. 중국의 힘이 커질수록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한·미 동맹을 유지하면서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 통일에 대한 중국의 지지를 확보하는 것은 대한민국 외교의 최대 난제다. 이런 미묘한 상황에서 이 대통령은 미국을 국빈방문한다. 개인적으로는 더 없는 영광이고, 행운이다. 하지만 국민은 날아올 청구서가 부담스럽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일러스트=강일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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