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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마지막 선택 ‘질서있는 부도’

중앙일보 2011.10.05 00:21 종합 3면 지면보기
“죽음의 소용돌이(Death Spiral)에 그리스가 휘말려들었다.” 4일(한국시간) 미국 경제전문 채널인 CNBC 앵커의 말이다. 디폴트(채무불이행)를 피할 수 없다는 얘기다. 실제 그리스는 빠르게 디폴트를 향해 떠밀려가고 있다. 올 긴축목표 달성에 실패했다. 2000억 유로(약 304조원)가 넘는 구제금융을 받으며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다.


예고 없이 디폴트 선언 땐
위기, 유럽 전체로 순식간 확산

 구제금융을 대는 쪽이 발끈했다. 이날 유로존 재무장관들은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압박했다. 구제금융 6차분(80억 유로) 지급도 11월 초까지 미뤘다. 애초 지난달 말이나 이달 초에 지급됐어야 하는 돈이다. 다행히 그리스는 애초 주장과는 달리 이달 말까지는 80억 유로가 없어도 견딜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스 정부는 서둘러 추가 긴축에 나섰다. 하지만 올 들어서만 세 번째 긴축계획 수정이다. “이번에도 공염불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이날 보도했다. 그리스인들이 의지가 없어서가 아니다. CNBC 방송은 “긴축 약속이 너무 가혹해 실천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채권국이 긴축 고삐를 풀어주지 않으면 그리스는 항복(디폴트)할 수밖에 없다. 이번 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발걸음이 더욱 분주하다. 그는 6일 유럽중앙은행(ECB)과 국제통화기금(IMF) 수장과 연쇄 회동한다. 9일엔 프랑스 대통령과 회담한다. 메르켈이 뽑아들 수 있는 카드는 경착륙(무질서한 디폴트) 또는 연착륙(질서 있는 디폴트)뿐이다.



 경착륙은 비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스가 사전 조율 없이 디폴트를 선언하면 금융위기가 본격화하면서 돈가뭄(신용경색)이 발생하기 십상이다. 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그리스 국채 가운데 952억 유로(약 146조원)의 만기가 이달에 몰려 있다. 방파제인 유럽재정안정기금(EFSF) 증액은 아직 완료되지 않았다. 순식간에 위기가 이탈리아·스페인을 덮칠 상황이다.



 메르켈은 채권 은행들의 손실 분담을 미리 정한 뒤 그리스를 부도시키는 연착륙을 선호한다. 유로존 재무장관들이 4일 운은 띄워 놓았다. 그들은 “채권 은행들의 고통분담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현재까지 고통분담 수준은 원금의 21% 정도다.



 어느 쪽이든 채권 은행들은 돈을 떼일 수밖에 없다. 요즘 유럽 시중은행 주가가 급락하는 까닭이다. 3일엔 벨기에 최대 은행인 덱시아가 궁지(자금난)에 몰렸다. “구제금융 투입이 불가피하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전망했다. 2008년 이후 처음으로 유럽의 시중 은행이 구제금융을 받는 사태가 발생할 듯하다.



강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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