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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에게 죽비 맞는 순간, 노래가 툭 튀어나왔죠

중앙일보 2011.10.05 00:20 종합 24면 지면보기



데뷔 15년, 6집 ‘투머로우’ 낸 웅산



웅산은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재즈 공연을 펼친다. 올 3월엔 일본의 재즈 전문지 ‘재즈비평’이 주최하는 ‘제5회 재즈오디오디스크대상’에서 금상(보컬 부문)을 수상했다. 한국을 넘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재즈 보컬리스트로 성장 중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삶이라는 찰나, 찰나라는 음악, 음악이라는 길, 길이라는 삶. 재즈 가수 웅산(38·雄山·본명 김은영)의 삶은 어떤 찰나에 결정되곤 했다. 문득 삶의 길이 정해지면 그 길을 묵묵히 걸었다.



 그의 삶에는 세 번의 중요한 찰나가 있었다. 맨 처음은 열일곱 때, 그러니까 웅산이 아니라 김은영으로 살던 때다. 평소처럼 아침 일찍 일어난 은영은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매일 학교만 오가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승려가 돼서 많은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겠어.” 은영은 그 길로 짐을 꾸려 충북 단양의 구인사로 들어갔다. 학교는 물론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였다.



 아, 저토록 결연한 모습이라니. 지난달 30일 웅산을 기다리면서 잔뜩 긴장했던 건 그래서였다. 입술을 꽉 깨문 강인한 여성을 떠올리던 차에 그가 들어섰다. 뒤이어 들리는 해맑은 웃음 소리. 상상 밖이었다. 그는 소박한 농담에도 크게 웃음을 터뜨리는 유쾌한 여성이었다.



 -상상했던 이미지와 많이 다르네요.



 “저 원래 이런데, 크하하하. 저는 늘 어디서든 자연스런 사람이고 싶어요. 음악도 자연을 닮기를 바라고요. 마치 숲 속 새소리처럼 말이죠.”



 그래, 그의 음악에선 자연의 소리가 들린다. 최근 발매한 6집 정규앨범 ‘투머로우(Tomorrow)’를 듣고선 그런 진단을 내렸다. 자작곡인 ‘투머로우’‘라이크 어 리버(Like a River)’ 등 12곡이 수록된 이 앨범은 가을 바람을 닮았다. 목소리는 차분히 내려앉았고, 재즈 리듬에선 청명한 바람결이 느껴진다.



 웅산이 재즈 음악을 시작한 지 올해로 15년이 흘렀다. 그런데 그는 어떻게 승려에서 뮤지션으로 방향을 틀었을까.



 “절에 들어간 지 2년쯤 흘렀을 때였어요. 수행을 하는 도중 깜빡 정신을 잃었는데, 주지 스님이 죽비로 제 어깨를 내리치셨죠. 그런데 그 순간 한영애 선배님의 ‘누구 없소’란 노래가 툭 튀어나온 거에요. 너무 놀랐죠. 다음 날 바로 짐을 쌌어요. 내가 할 공부는 불교 경전이 아니라 음악이라고 확신했거든요.”



 두 번째 찾아온 삶의 찰나에서도 그는 결연했다. 절에서 나오자마자 검정고시를 치르고 대학에 들어갔다. 대학에선 ‘돌핀스’란 록밴드에서 보컬로 활약했다. 가만, 록밴드라니? 재즈 밴드가 아니라?



 “절에서 나와서 음악을 하기로 결심했을 땐 무조건 록이라고 생각했어요. 마음 속에 무언가 내지르고 싶은 욕망만 강했던 때였죠. 평생 로커로 살 줄 알았어요.”



 그가 록에서 재즈로 전향한 건 세 번째 찰나 덕분이다. 대학을 졸업할 즈음 우연히 재즈 음악을 접했는데, 그 순간 방향을 틀었다.



 “어느 날 빌리 홀리데이의 ‘아임 어 풀 투 원트 유(I’m a fool to want you)’ 를 듣는데 그대로 감전됐어요. 그 전엔 재즈를 들어본 적도 없었거든요. 록처럼 꽉 찬 사운드가 아니라, 어딘가 텅 비어있는데도 마음을 움직이는 음악에 빠져들었죠.”



 이후 그는 재즈라는 길로 깊숙이 들어섰다. 정해진 악보 없이 찰나의 감성으로 빚어내는 음악, 재즈는 꼭 그의 삶을 닮았다. 그는 재즈를 택하면서 자신의 법명인 ‘웅산’을 끌어안았다.



 “재즈와 불교는 통한다고 생각해요. 불교는 궁극적으로 자아의 자유를 깨닫는 길이잖아요. 재즈 역시 리듬을 통해 자유를 꿈꾸죠. 많은 사람을 위로해준다는 의미에서 어쩌면 음악적인 수행일 수도 있고요.”



 재즈가 자유를 꿈꾼다면, 웅산은 재즈 그 자체다. 이번에 발매된 6집에선 자유롭게 피어 오르는 웅산의 재즈 숨결이 느껴진다. ‘꽃잎(신중현 곡)’‘찻잔(김창완 곡)’ 등 옛 가요를 재즈로 탈바꿈 시킨 것도 인상적이다.



 그에게 또 한 번 중대한 삶의 찰나가 찾아올까. 모르겠다. 다만, 그 찰나가 그가 재즈를 떠나는 순간만은 아니기를. 아무리 생각해도 웅산만큼 재즈에 고스란히 녹아 든 목소리를 찾기 힘들다. 웅산은 재즈의 동의어(同意語)다. 



글=정강현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빌리 홀리데이(Billy Holiday·1915~59)=1936년 데뷔한 미국의 여성 재즈 가수. 사라 본·엘라 피츠제랄드와 함께 세계 3대 여성 재즈 가수로 꼽힌다. 우울한 목소리 톤과 천부적인 곡 해석력을 지닌 가수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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