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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정 기자의 ‘금시초연’ ⑬ 정일련 ‘파트 오브 네이처’

중앙일보 2011.10.05 00:19 종합 25면 지면보기



국악기·서양악기,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어울림



작곡가 정일련씨. 그의 새 작품 ‘파트 오브 네이처’는 음(音)과 사람이 생기는 과정과 순환을 그린다.





독일에서 나고 자란 작곡가 정일련(47)씨는 1967~71년 한국에 머물렀다. 아버지 고(故) 정규명 박사의 옥살이 기간과 겹친다. 동베를린 사건이었다.



 정씨의 선친은 서울대 문리대를 나와 독일에서 물리학 공부를 한 학자였다. 처남을 만나기 위해 북한을 오간 혐의로 67년 한국에 송환돼 수감생활을 했다.



 “하도 어릴 때라 별로 기억은 없어요. 부모님이 자세한 얘기를 해주지도 않으셨고요. 하지만 집안 전체가 어두워졌죠.”



 독일로 돌아간 정씨는 양복 입은 동양 남자를 길에서 마주치면 두려웠다고 한다.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물론 좋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버지의 인생을 보면 마음이 아파요. 가슴에 맺힌 걸 전혀 풀지 못하고 2005년 돌아가셨으니….”



 그는 처음엔 환경 공학자가 되려 했다. 하지만 공과대학에 들어간 지 한 달 만에 그만뒀다. 기타리스트가 되고 싶어서였다. 베를린 예술대학에 입학했다. 그에게 ‘연주자’ 대신 ‘창작자’의 길을 열어준 것이 국악이다. 매해 베를린을 찾아와 사물놀이 공연을 열던 김덕수를 만났다.



 한국 타악기의 ‘카오스’가 그를 흔들어놨다.



 “리듬·박자는 한국 음악 만의 신선한 재료에요. 21세기의 실험적 현대음악이 외면하는 것들을 한국의 장구가 되살려내고 있어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힘이죠.”



 정씨는 작품을 쓸 때 머리에 장단을 먼저 떠올리는 작곡가가 됐다. 2009년 동·서양 악기를 아우르는 앙상블을 창단했다. 그의 음악 속에선 두 세계가 평화롭게 함께 머문다.



 국립국악관현악단(예술감독 황병기)의 위촉으로 이달 초연되는 그의 신작 ‘파트 오브 네이처(Part of Nature)’는 모두 여섯 악장으로 구성됐다. 자연의 일부인 인간을 그렸다. 국악기와 서양악기가 혼합된 관현악단이 연주하는 서곡 ‘출(出)’로 시작한다. 대금·피리가 ‘숨’, 해금·아쟁이 ‘심(心)’, 가야금·거문고가 ‘손’ 등 협주곡을 관현악단과 함께 연주한다.



 그리고 꽹가리·장구·북·징이 마지막을 장식한다. ‘혼(魂)’이다. 작곡가가 “조국에 대한 거부감을 씻어준 기막힌 장단”이라 칭한 사물놀이다. 연주시간 80분. 6, 7일 오후 8시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02-2280-4115.



김호정 기자



◆동베를린 사건=1967년 중앙정보부가 발표한 간첩단 사건. 동베를린(동백림·東伯林)의 유학생·교민 190여 명이 북조선 대사관, 평양을 드나들고 간첩 훈련을 받았다는 혐의로 송환됐고 34명이 유죄판결을 받았다. 2006년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는 이 사건이 정치적으로 부풀려졌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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