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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하정우, 옷도 말투도 계산했다

중앙일보 2011.10.05 00:18 종합 25면 지면보기



‘의뢰인’서 캐릭터 변신 성공



하정우는 ‘의뢰인’의 변호사 역에 대해 “실제의 나와 비슷해 연기하기 편했지만 대사량이 많아 무모할 정도로 연습했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묻지마 살인’을 벌이는 연쇄살인범(‘추격자’)이 아니다. 살인청부를 하는 조선족 청년(‘황해’)도, 무명 스키점프 선수(‘국가대표’)도 아니다. 하정우(33)의 본색은 최근 개봉한 법정스릴러 ‘의뢰인’에서 드러난다. 승률 99%의 변호사 성희 역을 맡은 이 영화는 하정우가 양복 차림이 꽤나 어울리는 배우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그는 성희를 유들유들한 캐릭터로 ‘하정우화(化)’해 다소 빡빡할 수 있는 영화에 여유로움을 불어넣는다.



 ‘의뢰인’을 위해 가장 먼저 준비한 건 “오래 전부터 양복을 입고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었다. ‘황해’ 때문에 늘어난 8㎏을 빼 ‘옷걸이’부터 만들었다. “군복 2년 입다 평상복 입으면 어색한 것처럼, 꾀죄죄한 행색이 쉽게 없어지지 않았어요. 동네에서 친구들 만나 술 한 잔 할 때도 양복을 입고 갔어요. 다들 ‘너 미쳤냐’고 웃더군요.”



 법조인도 만났다. “판사는 공무원, 검사는 형사나 운동선수, 변호사는 프리랜서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진짜 ‘도전’은 화법과 발성이었다.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을 앞에 놓고 아내 살인 용의자 민철(장혁)을 변호하게 된 성희는 “죄 없는 한 사람을 잡기보다 죄 있는 열 사람을 풀어주는 게 낫다”는 강렬한 최후 변론을 남긴다.



 “연극을 하던 20대로 돌아간 기분이었어요. 연극은 온몸을 무방비로 노출시키죠. 영화보다 즉흥성·쌍방향성도 덜하고요. 발음이 뭉치거나 토씨 하나 틀려도 설득력이 떨어지는 상황이었어요. 법정 맨 뒤 할머니 보조출연자도 제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게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손영성 감독의 권유로 그는 폴 뉴먼이 변호사로 나오는 ‘심판’(1982)을 봤다. “폴 뉴먼이 나른한 듯 어딘지 무욕(無慾)의 느낌을 풍기는 태도로 ‘한마디만 할 테니 들어봐’라고 하는데, 묘한 설득력이 있었어요. 마틴 스코시즈의 ‘좋은 친구들’(1990)에서 레이 리오타가 증인석에서 범인을 지목하고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걸어오는 장면도 참고했어요. 저도 공격적인 템포를 유지해야겠다 싶었죠.”



 그는 알아주는 연습벌레다. “스스로에게 숙제를 내죠. 대본 200번 읽고 자기, 같은 대사 50번 틀리지 않고 읽기, 틀리면 벌칙으로 볼펜 물고 다시 읽기….” 아버지(탤런트 김용건)에게 연기를 봐달라고 한 적은 없을까. “10년 전쯤 연극 ‘굿 닥터’를 할 때 독백 대사량이 너무 많아 아버지 앞에서 해봤어요. 믿을 수 없을 만큼 민망하고 어색했어요.(웃음) 그 다음부터 절대 안 하죠.”



 그의 연기론은 “관객의 보편적인 감성을 따라가기 위해 최대한 오차범위를 줄이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치밀하게 준비된 연기를 한다는 뜻이다. “로버트 드니로가 ‘굿 셰퍼드’(2006) 찍을 때 맷 데이먼한테 그랬대요. ‘넌 내일 일도 모르는데 다음 장면을 왜 미리 계산하느냐’고요. 즉흥적 몰입이냐, 치밀한 계산이냐, 배우의 영원한 딜레마죠.”



 그는 현재 ‘범죄와의 전쟁’ ‘러브픽션’을 찍고 있다. 2008년부터 주연작이 해마다 3편 꼴. ‘워커홀릭’ 수준이다. 그만의 답안을 찾아가는 과정일 게다.



글=기선민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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