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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古今通義 고금통의] 추고마비

중앙일보 2011.10.05 00:09 종합 33면 지면보기






이덕일 역사평론가



가을을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천고마비(天高馬肥)라고 말하지만 실제 중국 사서(史書)에서 이 말은 찾을 수 없다. 대신 당(唐)나라 두심언(杜審言)의 ‘소미도에게 주다(贈蘇味道)’라는 시에 “가을이 깊어지면 변방의 말이 살찌네(秋深塞馬肥)”라는 구절이 있다. 『송사(宋史)』 ‘이강(李綱)열전’에는 “(저들이) 추고마비(秋高馬肥)에 다시 와서 우리 강역을 어지럽히지 않으리라고 어찌 알겠습니까?”라는 말이 나온다. 말이 살찌는 가을에 흉노 같은 북방 기마민족이 농경민족인 한족(漢族)이 추수(秋收)한 곡식을 빼앗으러 온다는 뜻이다. 그래서 한족들이 가을이면 방어 준비에 바빠지는 것을 방추(防秋)라고 한다.



 시성(詩聖) 두보(杜甫)의 ‘대우(對雨)’에 “설령의 방추가 급하구나(雪嶺防秋急)”라는 시구가 있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지만 놀러 나가기 더 좋은 계절이다.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왕숙(王肅)열전’에는 “마땅히 삼여(三餘)에 독서를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데, “겨울은 한 해의 여가이고, 밤은 하루의 여가이며, 어둡고 비 오는 날은 때때의 여가이다(冬者歲之餘,夜者日之餘,陰雨者時之餘也)”라는 것이다. 그래서 삼여는 독서란 뜻으로도 사용된다. 독서한 사람과 독서하지 않는 사람을 용과 돼지에 비유하기도 한다.



 당나라 한유(韓愈)의 ‘부독서성남(符讀書城南)’이란 시가 있는데, 성남은 한유의 별장, 부(符)는 한유의 아들이므로 ‘성남으로 독서 가는 아들에게’라는 시다. 이 시에 두 아이가 어릴 때는 서로 비슷하지만 “나이 서른, 뼈대가 굵어질 때면 하나는 용이 되지만 하나는 돼지가 된다(三十骨骼成 乃一龍一猪)”는 구절이 있다. 『장자(莊子)』 ‘천하(天下)’ 편 “혜시(惠施)에는 여러 방면의 책이 다섯 수레”라는 말이 있는데, 이를 따서 두보는 “남아는 모름지기 다섯 수레의 책을 읽어야 하네(男兒須讀五車書)”라고 읊었고, 명나라 이어(李漁)도 ‘입옹대운(笠翁對韻)’에서 “남아 배 속에는 다섯 수레의 책이 있어야 한다(男兒腹內五車書)”고 말했다.



 그러나 사회가 혼탁할수록 독서 않고도 잘만 출세한다. 그래서 조선 후기 다산 정약용은 “독서 재상 얻기가 어렵구나/ 재상의 독서는 반드시 힘쓸 곳이 있는데(讀書宰相嗟難得/宰相讀書須用力)”라고 한탄했다. 현재 우리 사회는 독서 재상이 얼마나 있나? 사회 곳곳에 힘쓸 곳은 늘어나지만 별 힘을 못 쓰는 것 보면 짐작할 만하다.



이덕일 역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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