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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 뒤집어쓰고 한국 방송 들으며 탈북 준비”

중앙일보 2011.10.05 00:07 종합 10면 지면보기



탈북 9명 일본 거쳐 입국



4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한 탈북자 9명이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공항 귀빈주차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지난달 13일 목선을 타고 표류하던 이들은 일본 나가사키의 입국관리센터에서 보호를 받아왔다. [오종택 기자]







“해류에 휩쓸려 북한 해안으로 다시 돌아가거나, 탈북자를 북한으로 송환하는 중국에 도착하면 목숨을 건지기 힘들다. 그래서 일본으로 가는 게 안전하다고 판단했다. 간이 나침반에 의지해 어떻게든 한반도 연안을 벗어나 일본으로 가려 했다.”



일본을 거쳐 4일 서울에 도착한 9명의 탈북자는 일본 정부의 탈북 경위 조사에서 이런 취지의 진술을 했다고 요미우리신문이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탈북자들은 9월 8일 목선을 타고 함경북도 어대진을 출발했다. 한국으로 방향을 잡았지만 곧바로 폭풍우를 만났다. 목선의 일부 기자재들은 폭풍우에 파괴됐고, 자신들이 어디에 있는지 위치조차 가늠키 어려웠다. 탈북자들은 2007년 아오모리(靑森)현 후카우라(深浦)항에 표류했던 탈북자 4명이 본인들의 희망대로 한국행에 성공했던 일을 떠올렸다. ‘일본으로 가면 살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폭풍우를 견디고 남아 있던 간이 나침반에 의지해 목선을 어떻게든 동쪽으로 돌렸다. 당초에는 이들이 폭풍우를 만나 어쩔 수 없이 일본에 표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들이 어대진 출항 5일 만에 일본 이시카와(石川)현 노토(能登)반도 앞바다에서 발견된 것은 목숨을 건 노력의 결과인 셈이다.



 요미우리는 또 “탈북자들이 휴대전화와 단파 라디오를 이용해 치밀한 탈북 준비를 해온 사실이 조사 과정에서 밝혀졌다”고 전했다. 일본 정부 조사에 따르면 성인 탈북자들은 아이들이 잠든 심야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한국어 방송을 청취했다. 탈북에 필요한 정보들을 수집하기 위해서였다. 요미우리는 “한국으로 먼저 탈출한 탈북자들이 북한을 향해 보내는 방송으로 보인다”고 추측했다. 이들이 일본행을 선택한 결정적인 이유가 된 ‘2007년 아오모리현 탈북자 사례’도 이런 정보 수집 과정을 거쳐 알게 된 것이라고 요미우리는 전했다.



 탈북자들은 또 휴대전화로 해외에 있는 지인들과 통화를 하기도 했다. 일부 탈북자는 일본 정부의 조사 과정에서 “중국 국경과 가까운 지역으로 가면 휴대전화 전파가 잘 잡힌다. 그래서 휴대전화로 (이미 탈북한) 친척들과 전화 통화를 했다. 우편물을 주고받는 것도 가능했다”고 진술했다. 이번 탈북자 9명 중에는 발견 당시 휴대전화를 소지하고 있던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탈북에 이용한 목선을 살고 있던 마을 부근에 감춰뒀다. 그러곤 다른 사람들 몰래 연료를 조금씩 목선으로 운반하면서 탈북 D-데이를 기다려 온 것으로 나타났다. 탈북자 중 책임자를 자처한 남성은 일본 정부에 “인민군에 소속돼 있지만 주로 수산기지에서 낙지와 오징어를 잡았다”고 진술했고, 다른 한 사람은 “암시장에 물건을 내다 팔아 어느 정도 수입이 있었지만 아이들의 장래를 생각해 탈출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탈북 경위를 보도한 요미우리 신문은 “엄격한 것으로 알려진 북한의 정보 통제가 허술해진 것 같다”며 “북한의 현재 상황을 보여주는 귀중한 증언들을 탈북자들로부터 확보해 일본 정부가 분석에 돌입했다”고 전했다. 조사에 참가했던 일본 정부 관계자는 “북한의 일반 국민들이 이렇게 여러 가지 정보를 갖고 있다는 사실에 무척 놀랐다”고 말했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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