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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작곡가를 더 잘 알려면?

중앙선데이 2011.10.01 23:49 238호 5면 지면보기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의 시작은 오케스트라가 합니다. 적당한 맥박을 유지하는 단조(短調)를 현ㆍ관악기가 함께 연주합니다. 이어 우수 짙은 바이올린이 노래를 이어나갑니다.4분 정도 지나면 피아노가 같은 주제를 연주하며 등장합니다. 지휘자도 청중도 피아니스트에게 시선을 주는 시간이죠. 하지만 이때는 오케스트라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굉장히 심심합니다. 피아노 건반 위에선 웬만한 독주곡에 버금가는 기술이 펼쳐지고 있는 중입니다. 하지만 오케스트라는 거의 박자만 맞춰주는 ‘반주’ 느낌이 듭니다. 여백이 더 많은 악보니까요.분명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협연하는 협주곡입니다. 하지만 쇼팽의 피아노 편애는 심각합니다. 오케스트라를 들러리 세운다는 불평도 심심치 않게 사죠.

김호정 기자의 클래식 상담실

올 초 프랑스의 피아니스트 시프리앙 카차리스는 쇼팽 협주곡 2번을 다양한 방법으로 연주해 녹음했습니다. ‘피아노+오케스트라’는 물론 ‘피아노+피아노’ ‘피아노+현악 5중주’, 피아노 독주 등으로 여러 번 연주해본 겁니다. 소리의 중량감은 물론 줄어들었습니다. 하지만 쇼팽의 오케스트라 파트는 현악 5중주 정도로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다는 결론이 생기더군요.쇼팽은 약 200개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모든 곡엔 피아노가 들어갑니다. 그리고 피아노가 주인공입니다. 첼로 소나타 한 곡과 성악곡 몇 곡이 예외가 되겠네요. 그래서 다음과 같은 작품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쇼팽의 교향곡, 바이올린 협주곡, 현악 4중주 등 말입니다.

더 해볼까요. 유명한 ‘신세계로부터’를 비롯해 아홉 곡의 교향곡을 남긴 드보르자크 아시죠. 드보르자크의 피아노 소나타 같은 작품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는 동유럽 출신답게 바이올린ㆍ첼로 등 현악기에 푹 빠진 작곡가였으니까요. 피아노 협주곡을 남기긴 했습니다. 하지만 피아니스트들은 ‘이 곡이 별로 유명하지 않은 이유가 있다’고 투덜댑니다. 피아노 주법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채 썼다는 겁니다. 쇼팽과 반대 경우죠. 브람스도 친한 친구인 바이올리니스트 요하임의 도움이 없었다면 바이올린 협주곡을 쓰지 못했을 거란 말도 있습니다.

이처럼 작곡가들도 ‘못하는 것’ 또는 ‘하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때론 이런 점이 그들을 더 잘 말해줍니다. 좋아하는 것보다는 싫어하는 것, 또 못 먹는 음식이 한 사람을 잘 보여주듯 말이죠.

물론 하이든ㆍ모차르트ㆍ베토벤 같은 고전 시대 작곡가들은 두루 잘 했습니다. 거의 모든 악기의 독주곡을 남겼고, 교향악단ㆍ합창단을 자유롭게 다뤘죠. 하지만 그들의 후배 격인 낭만 시대 작곡가들은 전문성을 강조했습니다. 리스트는 피아노, 파가니니는 바이올린, 말러는 오케스트라와 성악, 스트라빈스키는 발레 음악과 현악기를 특기로 삼았습니다. 이들이 쓰지 않는 음악을 상상해 보는 것도 즐겁습니다. 쇼팽이 바이올린 협주곡을 썼다면 어떤 음악일까요.

A 손 안 댄 분야 상상하세요

※클래식 음악에 대한 질문을 받습니다.클래식을 담당하는 김호정 기자의 e-메일로 궁금한 것을 보내주세요.


김호정씨는 중앙일보 클래식ㆍ국악 담당기자다. 읽으면 듣고 싶어지는 글을 쓰는 것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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