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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불협화음 막는 ‘인터미션’

중앙선데이 2011.10.01 23:41 238호 27면 지면보기
난처하다. 만약 다시 결혼한다면 지금의 배우자를 선택하겠느냐고? 아내가 도끼눈을 뜨고 쳐다보고 있는데 뭐라고 답할 것인가. 우물쭈물 아니면 맥 빠진 소리로 “예” 하고 만다. 그게 사는 길이다. 내 친구는 지금의 아내와 결혼한다고 자신 있게 답했다. 이유를 물었다. “다른 여자하고 또다시 적응해 살 것을 생각하니 끔찍해서”란다. 기막히다.

삶과 믿음

처칠도 어느 날 이런 질문을 받는다. “다시 태어난다면 무슨 일을 하고 싶으신가요.” 처칠은 옆에 있던 아내의 손을 잡아 일으키며 답한다.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전, 제 아내의 두 번째 남편이 될 것입니다.” 그 두 번째 결혼이 눈앞에 와 있다.

평균 수명이 60에 머물던 시대는 먹고사는 일에 바빴다. 생계에 쫓기다 허리를 펴면 바로 눈앞에 죽음이 와 있었다. 부부 관계는 봄의 목련과도 같았다. 팝콘처럼 피어났다 바나나 껍질처럼 새까맣게 썩어갔다. 하지만 평균 수명이 90에 육박한 이즈음에는 달라졌다. 평균 은퇴 연령인 57세에 3년을 보너스로 얹어준다. 60부터 카운트를 한다 해도 90까지 한 세대를 더 살아야 한다. ‘다시 태어난다면 하고’ 물었던 30년 세월이 눈앞에 와 있는 셈이다. 뭘 먹고 살 것이냐는 염려에 앞서 또다시 한 여자와 남자로 살아가야 한다. 어떤 이에게는 축복이고 어떤 이에게는 저주가 될 게 틀림없다. 오죽하면 ‘재수(?) 없으면 100살’이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그것이 강제이건 선택이건 이전의 방식으로는 결단코 ‘NO’다. ‘NO’를 ‘ON’으로 뒤집지 않고는 절대 불가다. “성질 부릴 만큼 부려놓고 뒤끝은 없다고? 그래 거기다 뒤끝까지 있으면 어떡할 건데. 한번은 몰라도 두 번은 안 돼.” 어디 아내들뿐이랴. ‘변덕스러운 성질에다 미련 곰탱이 같은 당신 비위 맞추고 또 살라고. 한 번 속지 내가 두 번 속나’.

세월이 더한다고 부부 사이가 깊어질 리 없다. 나이 먹는다고 저절로 행복해질 리도 없다. 자식들 키우고 먹고사느라 바빴던 세월, 이제는 소진된 사랑을 보충해야 한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 급유 없이 장거리를 떠날 수 없지 않은가.

축구에 ‘하프타임’이 있다면 연주회에는 ‘인터미션(intermission)’이 있다. 연주회 중간 15분에서 20분가량의 휴식시간을 이른다. 연주자들은 한숨 돌리며 마음을 다잡아 다음 연주를 준비한다. 청중은 커피 등 음료를 마시며 평을 나누고 다음 연주를 기다린다. 전통적으로 1부에서는 서곡 비슷한 짧은 관현악곡 하나쯤, 2부에서는 교향곡이나 비중 있는 관현악곡 하나로 구성된다.

부부를 일러 ‘실과 바늘의 두 악장’이라 한다. 길고 긴 연주를 인터미션 없이 계속한다면 얼마나 지루하고 또 피곤할까. 인터미션이란 inter에 mission이 합쳐진 말로 서로의 결혼생활을 돌아보고 위로하는 중간 마디다. 불협화음을 막기 위해 느슨해진 악기를 조이고 연주할 곡을 훑어보는 시간이다. 다음 연주를 위해 몸가짐을 추스르고 무장할 시간이다.

‘이 세상 모든 부부는 자신의 사랑을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선택을 사랑해야 한다’.
‘이 세상 모든 부부는 사랑의 증표로 약속해야 한다. 그리고 그 약속을 증명해 내야 한다’.
‘이 세상 모든 부부는 약속을 지킬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그리고 미처 지키지 못한 약속을 위해 두 번째 기회를 제공해 줘야 한다’.

이런 미션(mission) 하나면 또 한 번 주어진 결혼, 해볼 만하지 않은가. 그때는 나도 처칠처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극히 비정치적인 발언으로 말이다.



송길원 가족생태학자. 행복발전소 하이패밀리 대표로 일하고 있다. 트위터(@happyzzone)와 페이스북으로 세상과 교회의 소통을 지향하는 문화 리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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