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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고 탕진의 역설

중앙선데이 2011.10.01 23:31 238호 29면 지면보기
과도한 국가 부채 때문에 미국과 유럽 각국이 몸살을 앓고 있다. 전비(戰費)나 복지 지출 등으로 예산을 탕진한 탓이다. 아무리 부자 나라도 낭비 앞에선 장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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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 최고의 부자 영주로 통했던 엘레오노르(1122~1204)도 그런 경우다. 이 여성은 역사상 유일하게 프랑스(1137~1152)와 잉글랜드(1154~1189)의 왕비가 됐다. 프랑스 서남부 아키텐 공국의 공녀로 태어난 그는 아버지인 아키텐 공작 귀욤 10세가 아들 없이 세상을 떠나자 여공작이 됐다. 미혼의 여공작은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신붓감이었다.

엘레오노르는 프랑스 국왕 루이 7세(1120~1180, 재위 1131~1180)를 신랑감으로 골랐다. 그는 십자군 출정에 대한 열정이 있었다. 그래서 남편과 함께 제2차 십자군 원정을 다녀왔다. 그런데 엄청난 비용에도 불구하고 원정이 실적 없이 끝나면서 부부 사이가 벌어져 1152년 결혼 무효를 선언했다. 이혼을 허용하지 않던 가톨릭 세계에서 교묘한 형식으로 결별한 것이다. 엘레오노르는 바로 그해 프랑스 귀족인 앙리 플랜태저넛과 재혼했다. 앙리는 2년 뒤 잉글랜드 국왕 헨리 2세(1133~1189, 재위 1154~1180)로 즉위했다. 노르만 왕가의 딸로 잉글랜드 영주였던 어머니 마틸다의 핏줄 덕에 왕이 된 것이다.

문제는 그가 잉글랜드 왕이 된 아들에게 십자군의 열정을 물려줬다는 것이다. 헨리 2세에 이어 왕위에 오른 아들 리처드 1세(1157~1199)다. 제3차 십자군으로 출전한 사자심왕 리처드(Richard the Lionheart)가 바로 그였다. 원정 비용은 엄청났다. 엘레오노르는 수완을 발휘해 잉글랜드와 여러 영지에서 몇 년치 세금을 거둬 전비로 챙겨줬다. 리처드는 십자군에서 돌아오다 성지에서부터 사이가 나빴던 오스트리아 대공 레오폴드 5세에게 납치됐다. 그러자 엘레오노르는 잉글랜드 4년치 세수에 해당하는 몸값을 마련해 아들을 데려왔다. 이 과정에서 국고는 탕진됐고, 백성들은 혹독한 세금에 시달렸다.

뒤를 이은 동생 존 왕(1166~1216)은 텅 빈 곳간과 불만에 가득 찬 백성을 물려받았다. 활 잘 쏘는 숲 속의 의열단이 가혹한 세금을 거두려는 귀족들을 혼내주는 내용의 로빈 후드 전설은 이런 배경에서 등장했다. 존 왕은 세금을 더 거두려다 귀족들의 저항에 직면해 결국 그들의 권리를 재확인하고, ‘대표 없이는 과세 없다’는 원칙의 바탕이 되는 마그나 카르타(대헌장)에 서명했다. 군주 권한을 스스로 축소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십자군 원정으로 야기된 국고 탕진이 전제군주제를 의회민주제로 바꾸는 계기가 됐다.

국고 탕진은 필연적으로 제도와 역사의 변화로 이어진다. 과도한 국가 채무와 금융 위기에 시달리는 미국과 그리스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이제 선택의 시간을 맞고 있다. 빚쟁이 나라들 때문에 피해를 보고 있는 다른 나라들이 그들에게 ‘21세기 국제사회 마그나 카르타’를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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