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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봤습니다] 박정현 기자의 서울 동산초 고전 읽기 수업

중앙일보 2011.09.28 04:00 Week& 5면 지면보기
21일 오전 9시50분 서울 동산초 6학년 1반 교실. 반 전체 학생이 『중학생이 보는 오만과 편견』(신원문화사)을 읽고 있다. 480쪽의 두꺼운 책이다. 분량이나 내용이 벅찰 듯한데 학생들의 표정은 덤덤하다. 이 학교 전교생은 매일 아침 고전을 읽는다. 3월부터 매주 1차시 정규 수업시간에 고전을 배운다. 지금까지 8~9권을 읽은 터라 두꺼운 고전도 거뜬히 읽어 낸다. 동산초 고전 수업 현장을 기자가 찾아가 봤다.


선생님 ‘아연실색’이 뭐예요?
너희들 말로 하면 ‘깜놀’이지







서울 동산초 6학년 1반 학생들이 고전 읽기 정규 수업시간에 ‘오만과 편견’을 읽고 있다. [최명헌 기자]







다양한 활동하며 재미있게 읽기



6학년 학생들이 9월 한 달 동안 읽는 책은 『오만과 편견』이다. 학생들은 15분가량 책을 읽으며 모르는 어휘에 동그라미를 쳤다. 이것을 옆 친구에게 물어 해결하고 그래도 모르는 말은 손을 들고 질문했다. “‘아연실색’이 뭐예요?”라는 한 학생의 질문에 담임 송재환 교사가 “너희들 말로 ‘깜놀’이라는 뜻”이라고 설명하자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책에서 읽은 내용과 같은 부분의 영화를 10분 동안 감상했다. 교사와 학생들은 원작과 영화를 비교하며 여러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김민정양은 “원작에서는 주인공의 사랑이 더디게 표현되는데 영화에서는 진행이 너무 빠르다”고 했다.



1학기부터 학생들은 8권의 책을 읽으며 여러 활동을 했다. 『톨스토이 단편선』을 읽을 때는 감동 깊은 문구에 밑줄을 긋고 ‘한 구절 노트’를 만들었고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을 읽으며 연극을 하기도 했다. 학생들이 가장 좋았다고 평가하는 『논어』를 읽을 때는 각자 명구절을 뽑아 투표를 하기도 했다. 이때 1등으로 뽑힌 문구는 학이편에 나오는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였다.



시범학급 운영 성과 커 확대



독서와 학업 성취의 상관관계는 잘 알려져 있다. 책을 많이 읽으면 학습 능력이 좋아지고 사고력은 물론 문제해결 능력이 향상된다. 송 교사는 “이 때문에 ‘독서를 위한 독서’가 되는 부작용이 생겼다”고 말했다. 다독에만 치우쳐 정작 읽어야 하는 책은 뒷전으로 하고 흥미 위주의 만화나 판타지물에 빠진다는 것이다. 그는 학생들에게 양질의 독서가 필요하다고 느끼고 ‘고전 읽기’에서 그 대안을 찾았다.



고전 읽기의 중요성은 세계 곳곳에서 이미 검증됐다. 예컨대 설립 초기 삼류대학이었던 미국 시카고대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명문대가 됐다. 1929년 부임한 로버트 허친슨 총장이 ‘고전 100권 읽기 운동’을 한 성과다.



송 교사는 뜻을 같이하는 동료 교사들과 머리를 맞댔다. 학년별로 어떤 책을 읽혀야 할지, 한 달에 몇 권을 읽는 게 적당할지, 문학·인문·철학 같은 고전 분야를 어떻게 배분할지 연구했다. 교사들은 1년 동안 시범 학급을 운영하며 학생들이 기대 이상으로 잘 읽는 것을 확인한 뒤 올해 전 학년으로 고전 읽기를 확대했다.



책은 학생들의 수준을 고려해 선정한다. 각 학년 교사들이 참여해 어느 책을 읽을 수 있을지 가늠하고, 한 달 수업을 마친 뒤 품평회를 열어 고전 목록을 업데이트한다. 송 교사는 “원본 그대로를 전문 번역가가 번역한 작품을 선택해야 실패 확률이 작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은 한 달 동안 한 권의 고전을 읽는다. 읽어 치우기 식이 아닌 ‘암탉이 병아리를 품듯’ 고전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 이 학교 교사들의 생각이다. 한 달 정도는 가지고 다니며 읽어야 한 달 내내 그 책 내용이 머릿속에 있다.



고전 읽기는 어떻게 읽느냐가 중요하다. 고전의 중요성만 강조해 섣불리 시작했다가는 실패하기 십상이다. 송 교사는 “가정에서 고전 읽기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건 부모가 같이 읽는 것”이라며 “소학은 짧아서 30분 정도만 같이 읽고 이야기를 나누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글 많은 책 두렵지 않고 자존감 높아져



오현성군은 고전을 배운다고 했을 때 처음엔 고개를 갸우뚱했다. 딱딱하고 지루할 것 같아서다. 오군은 “평소 만화책을 좋아했는데 톨스토이 단편서를 읽은 뒤 고전의 재미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지금은 주위에 고전 읽기를 권하는 자칭 홍보대사가 됐다. 책 읽기를 싫어하던 이태경군은 논어의 매력에 푹 빠졌다. 모르는 어휘가 많아 단어를 찾아가면서 읽었지만 지금은 기억에 남은 한 줄을 노트에 모은 ‘한 구절 공책’을 들고 다닐 정도로 고전 읽기를 즐긴다. 손영애양은 “논어나 톨스토이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숨어 있다”며 “고전을 읽은 뒤 생각하는 깊이가 달라진 것 같다”고 했다.



송 교사는 “고전을 읽음으로써 어휘가 늘고 국어 점수가 오르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성과가 더 크다”고 말했다. 어려운 『논어』를 읽고 유명 작품을 읽으면서 자존감이 커진다는 것이다. 850쪽의 『제인에어』를 가뿐하게 읽는 등 두꺼운 책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진 것도 큰 성과다. 송 교사는 “고전 읽기는 인성교육에도 효과가 있다”며 “따로 인성교육을 할 필요 없이 『명심보감』 한 권을 읽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글=박정현 기자

사진=최명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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