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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넷 아들이 떠났다, 아버지는 첼로를 들었다

중앙일보 2011.09.28 03:00 종합 27면 지면보기



슬픔 딛고 35주년 콘서트 여는 조 트리오



출범 35년을 맞은 조 트리오.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해온 그들이 다음 달에도 한 무대에 선다. 왼쪽부터 조영미·영방·영창씨.





장례식은 지난 추석에 치렀다. 스물넷, 올 11월 말 생일에 스물다섯이 되는 청년, 조원근의 죽음이었다. 한 빌딩 창가에서 사고로 추락했다. 첼리스트 조영창(53)씨가 순식간에 아들을 잃었다. 건축·사진에 재능이 많던 막내였다. 독일에서 태어나 학교를 마치고 “한국을 알고 싶다”며 형과 함께 서울에 머물던 중이었다. 아들을 보내고, 조씨는 바로 베이징(北京)으로 떠났다. 베토벤 첼로 소나타·변주곡 전곡 연주를 위해서다.



 27일 베이징에서 전화를 받은 목소리가 잠겼다. “슬픔은 얘기를 할 수도 없을 정도다. 일생 없어지지 않을 거다. 하지만 큰 아들과 얘기했다. 우리가 열심히, 더 열심히 살아야 죽은 원근이가 편하게 떠날 거라고.” 조씨가 아들을 묻고 두 주 만에 무대에 오른 까닭이다.



 “친구들의 위로 전화도 받기 힘들다”는 그에게 가장 큰 위로는 음악이다. 그 다음은 평생을 ‘음악 동지’로 지낸 누나들이다. 다음 달 11일 누나 둘과 함께 서울 예술의전당 무대에 오른다. 세 남매가 만든 조 트리오(trio·삼중주) 35주년을 기념하는 무대다. 피아니스트 조영방(58), 바이올리니스트 조영미(56)씨가 멤버다. 이들은 1977년 스위스 제네바 국제 콩쿠르 트리오 부문에서 2위에 오르며 이름을 알렸다. 독주가 아닌 합주로 전한 희소식이었다.



 맏이 조영방씨는 “당시 셋의 나이를 합하면 65세로 최연소 팀이었다. 그래서 기대하지 못했는데 수상하고 ‘가족이라 됐다’며 기뻐했다. 가족 특유의 소통을 하며 연습했기 때문이었다”고 기억했다. 셋은 어려울 때 서로 힘이 됐다. 영미씨는 “언니는 독일에, 나와 영창은 미국에 있었다. 당시 어떤 곳에도 한국인이 많지 않았다. 그러다 모여 악기를 함께 맞추니 천국에 온 것 같았다”고 했다.



 지난해 10월 아버지 조상현씨가 87세로 작고했을 때도 셋은 똘똘 뭉쳤다. “아버지처럼 열심히 산 분이 없었다. 갑작스럽게 쓰러져 돌아가신 날 아침에도 노래 연습을 하셨던 분이다. 우리는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그 ‘열심’을 배우자 다짐했다.”(조영미) 성악가로 국회의원을 지낸 아버지가 생전에 했던 일을 추억했을 때도 이들은 함께했다.



 다음 달 조 트리오의 무대는 원래 아버지를 위한 것이었다. 아버지의 조언을 들으며 함께 연습했던 멘델스존 트리오 2번도 연주 곡목에 넣었다. 하지만 또 한 번 전해진 죽음이 콘서트를 더욱 무겁게 했다. 영미씨는 “아마 세 명 모두 머리에선 공연 취소를 떠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말로 하지 않았다. 그리고 영창이 공연을 해야겠다 말했다. 요즘 연습과 연주를 할 때마다 세상 떠난 조카가 우리를 응원하고 도와주고 있다 느낀다”고 전했다.



 세 남매는 음악의 영적인 힘을 믿는다. 슬픔이 떠오를 때마다 음악을 붙드는 것도 셋의 공통점이다. 영방씨도 아버지가 작고한 바로 다음 날 연주를 취소하지 않고 했던 경험이 있다. 이들은 “세상을 떠난 이들이 우리가 연주해야 기뻐할 것이라 믿는다”고 입을 모았다.



 조 트리오의 앙코르 곡은 찬송가 몇 곡이다. 영창씨는 “아깝게 떠난 아이를 더 편하게 있게 해주고 싶다. 또 아버지의 1주기에 음악으로 존경을 표하고 싶다”고 말했다. 자식으로서, 또 부모로서 부르는 노래다.



  김호정 기자





◆조 트리오=한국의 대표적 음악 가족 앙상블. 조영방·영미·영창씨가 멤버다. 1976년 결성돼 이듬해 스위스 제네바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2위에 올랐다. 80년 뮌헨 콩쿠르에서 3위를 하며 전성기를 열었다. 독일·스웨덴·노르웨이부터 인도·일본까지 전세계의 무대를 오가며 활발히 활동했다. 93, 97년 두 장의 앨범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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