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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예수’ 장기려 선생 탄생 100주년 … 49.5㎡ 옥탑방에 스민 청빈·나눔의 삶

중앙일보 2011.09.28 00:23 종합 31면 지면보기



오늘 부산시청서 기념행사 … 마지막 살던 집 공개



장기려 박사가 1975년 설립된 부산시 동구 수정동 청십자병원에서 회진을 돌며 환자들의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부산과학기술협의회 제공]





27일 부산 고신대 복음병원 3동 8층 옥탑방. 굳게 닫힌 철문 옆에 한자로 ‘장기려’라고 이름만 새긴 문패가 걸려있다. 신발장엔 구두 2켤레와 운동화·슬리퍼가 1켤레씩 놓여있다. 49.5㎡의 집은 침실·거실·부엌으로 나눠져 있다. 침실에는 철제책상, 1인용 소파, 침대, 책장뿐이다. 책상엔 수첩 몇 권, 그 위에 검은색 안경이 놓여 있다.



 ‘한국의 슈바이처’ ‘작은 예수’로 불리는 고 장기려(1911~1995) 박사가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살던 집이다. 평생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며 자신은 변변한 집 한 채 마련하지 못해 ‘바보의사’로 불렸던 그가 생전 유일하게 소유했던 재산은 어쩌면 자신의 침실에서 바라보이는 송도해수욕장의 풍경이 전부였는지도 모른다.



 설을 앞둔 어느날 지인이 선물한 한복을 방에 걸어두었는데 도둑이 훔쳐갔단다. 잠에서 깬 장 박사는 도둑이 흘리고 간 한복의 허리띠를 들고 뛰쳐 나오며 ‘이 허리 띠 좀 갖다 주어라’고 말했단다. 35년간 장 박사와 함께 살며 보필했던 손동길(70)씨가 들려주는 일화다.



 평북 용천 출신인 장 박사는 1932년 경성의전을 졸업하고 50년 12월 월남했다. 부인과 5남매를 북에 둔 채 둘째 아들만 데리고 피난 수도인 부산으로 왔다. 장 박사는 이후 복음병원장(1951~1976), 청십자병원장(1975~1983), 부산아동병원장(1976), 부산 백병원 명예원장(1983)으로 인술을 폈다.



 그는 복음병원장 시절부터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했다. 치료비를 낼 수 없는 환자에게 병원 뒷문으로 도망치도록 일러주거나, 가난 때문에 치료받지 못하는 환자를 위해 병원을 직접 설득했던 일화들은 아직도 유명하다.



 장 박사는 68년 우리나라 최초의 의료보험조합인 ‘청십자 의료협동조합’도 만들었다. ‘건강할 때 서로 돕고, 아플 때 도움 받자’라는 청십자 조합의 정신은 이후 89년 전 국민 의료보험제도로 발전했다. ‘이 땅에 돈이 없어 병원에 가지 못하는 사람이 없도록 하겠다’는 그의 뜻이 실현된 것이다.



장 박사는 이 같은 공로로 79년 막사이사이상, 95년 인도주의실천의사상을 받았고, 2005년에는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에 봉헌됐다.



 28일 오후 3시 부산시청 대강당에서는 ‘성산 장기려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식’이 열린다. 장 박사의 업적을 볼 수 있는 자서전과 기념도서, 그의 모습을 담은 사진과 기념영상도 볼 수 있다.



부산=위성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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