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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일손 부족” 외면하는 통계 행정

중앙일보 2011.09.28 00:21 경제 8면 지면보기






권혁주
경제부문 기자




‘통계의 함정’이란 말이 있다. 그저 통계 숫자만 들여다보다간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기 십상이라는 뜻에서 생긴 말이다.



 2008년 9월 세계 금융위기가 일어나고 1년 뒤 한국은 자칫 이런 통계의 함정에 빠질 뻔했다. 2009년 3분기 경제성장률이 전 분기 대비 2.9%를 기록했다는 한국은행 발표가 나왔다. 전 세계는 ‘가장 빨리 위기에서 벗어난 모범 사례’라고 치켜세웠다.



 하지만 현실은 마냥 샴페인에 젖어 있을 만한 것이 아니었다. 중소기업들로부터 볼멘소리가 나왔다. 회복의 과실이 중기엔 별로 돌아오지 않았다. ‘전 분기 대비 2.9% 성장’이란 통계에 가려진 현실이었다. 문제를 인식한 정부는 결국 ‘동반성장’이란 카드를 꺼냈다.



 새삼 과거를 떠올리며 ‘통계의 함정’을 거론한 건 26일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과 중기 대표들 사이에 오간 얘기 때문이다. 이 장관은 고용과 관련한 중기들의 어려움을 알아보려고 김기문 중기중앙회장을 비롯한 대표단을 만났다.



 중기 쪽의 첫 요구는 “현장 일손이 달리니 외국인 고용 한도(쿼터)를 늘려 달라”는 것이었다. 올 5월 중기청과 함께한 외국인력 수요조사를 바탕으로 “올해 4만 명인 한도를 3만4000명 더 늘려야 한다”고도 했다.



 이 장관은 통계를 들어가며 답했다. “대내외 경제가 불안하다. 8월 (내국인) 제조업 취업자가 전년보다 2만8000명 줄었다. 이 시점에서 외국 인력을 확대하는 것은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 경기가 불투명한 때 외국인 쿼터를 확대하면 국민들이 일자리를 뺏길 수 있다는 우려였다.



 그러나 중기인들의 생각은 달랐다. 장관과의 대화 자리에 있던 한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쿼터를 늘려 달라는 분야는 금융위기 때도 내국인들이 거들떠보지 않던 일자리다. 일손이 모자라 외국인을 더 쓰게 해달라는 건데 내국인 일자리를 뺏는다는 생각은 좀….”



 통계 수치를 든 장관보다 현실에 근거한 중기 대표들의 주장이 더 논리적으로 들린 건 기자만의 생각일까. 아마 이 장관은 스스로 ‘제조업 취업자 2만8000명 감소’라는 통계의 함정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현실을 파악하려 간담회를 마련했을 게다. 모쪼록 정책을 최종 결정할 때는 장관이 파악한 현실이 반영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권혁주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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