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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古今通義 고금통의] 정의

중앙일보 2011.09.28 00:20 종합 33면 지면보기








정의란 무엇인가? 원래는 경전(經典)이나 역사서의 옳은 뜻풀이를 뜻했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 당나라 장수절(張守節)이 주석을 달고 제목을 『사기정의(史記正義)』로 붙인 것이 이를 말해준다. 청(淸)나라 건륭제(乾隆帝)의 명으로 편찬한 『흠정 사고전서(欽定四庫全書)』 중의 『주역정의(周易正義)』는 “여러 경전의 정의(正義)는 전적(典籍)에 근거해야 한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 역시 정의가 경전의 뜻풀이임을 말해 준다. 당나라 때 공영달(孔穎達)이 시경(詩經)·서경(書經)·역경(易經)·예기(禮記)·춘추(春秋)에 주석한 책 제목이 『오경정의(五經正義)』인 것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현재 사회에서 인식하는 정의는 올바른 일이 실현된 상태를 뜻한다. 예나 지금이나 의(義)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공자는 『논어(論語)』 ‘리인(里仁)’편에서 “군자는 의에 밝고 소인은 이(利)에 밝다”고 말했다. 세상은 항상 군자보다는 소인이 많기 때문에 그때도 의를 추구하는 군자는 현실적으로는 손해를 봤다는 뜻이다. 그래서 공자는 『논어』 ‘위정(爲政)’편에서 “의(義)를 보고도 행하지 않는 것은 용기가 없는 것이다”라고까지 의의 실천을 권했다. 의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때로 목숨까지 걸어야 한다. 『사기(史記)』 ‘채택열전(蔡澤列傳)’에 “이렇게 군자는 난세에 의로써 죽는데, 죽음을 집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여긴다〔視死如歸〕”는 구절이 있다. 때로는 죽음을 집으로 가는 것처럼 여겨야 의를 실천할 수 있다.



 그런데 『묵자(墨子)』는 ‘경상(經上)’편에서 “의는 이(利)이다〔義利也〕”라고 말했다. 사회주의 사상의 일종인 겸애설(兼愛說)을 주장한 묵자의 이 말은 천하를 이롭게 하는 의(義)가 이(利)라는 뜻이다. 청말(淸末)의 사상가 양계초(梁啓超)는 묵자를 “작은 예수이자 큰 마르크스”라고 평가했는데, 이런 의가 실현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쉬울 리가 없다. 묵자에게는 의가 이가 되는 사회 실현을 위해 목숨 거는 결사집단이 있었다. 『회남자(淮南子)』 ‘태족훈(泰族訓)’에 “묵자의 일을 따르는 자〔服役者〕가 백팔십 명인데, 불에 뛰어들고 칼을 밟고 죽는 한이 있어도 한 발도 물러나지 않았다”고 전하고 있다. 이런 결사집단이 있었어도 사회 정의 실현은 미미했다. 사회 정의는 늘 미완이기에 목숨 걸고 추구할 가치가 있는지도 모른다. 결과뿐 아니라 과정도 중요하다는 뜻이다.



이덕일 역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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