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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법정을 바꾸는 ‘경청’의 힘

중앙일보 2011.09.28 00:18 종합 34면 지면보기






권석천
사회부문 차장




# 카페 창가엔 햇볕이 어른거리고 있었다. 궁금하시죠? 먼저 얘기를 꺼낸 건 A였다.



 “정말 최악의 상황만 거듭됐습니다. 피의자로 입건되고, 조사를 받게 되고, 뉴스에 나오고…. 거꾸로 그런 확률로 행운이 계속됐다면 로또 1등에 몇 번 당첨됐을 거라는 생각까지 들더군요.” 씁쓸한 표정을 짓던 A는 “업보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 업보요? 무슨 업보를….



 “법정에서 피고인들이 항변하려 할 때 으레 하는 변명이겠거니, 여긴 적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일방적으로 밀려가는 입장이 되고 보니….”



 그렇다. A는 법조인이다. 여론의 재판대에 서게 되면서 판사 시절 자신의 법정에 섰던 이들의 얼굴을 떠올렸던 것이다. 과연 자신이 그들에게 최선을 다했는지 자문한 것이다.



 # 대개의 경우 재판 과정, ‘죄와 벌’의 틀(frame) 속에서 인간은 증발되고 만다. 객관적 증거와 정황 판단에 급급하다 보면 한 사람의 인생을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잊게 된다. 특히 수많은 사건이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 1, 2, 3심을 통과하는 상황에서 당사자들이 말하는 또 다른 진실에 눈길을 돌리기는 쉽지 않다.



 몇 해 전 대전고등법원의 한 형사 재판부가 전국에서 가장 높은 항소 기각률을 기록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판결에 불복한 상고율도 가장 낮았다. 이 재판부의 재판장은 피고인에게 발언권을 가급적 많이 주고, 왜 죄가 되는지를 설명하려 노력했다고 한다. 판결문에서도 “이유 없다”는 한마디 대신 “이러저러해서 이유가 타당하지 않다”고 구체적으로 제시해줌으로써 피고인들의 승복을 이끌어냈다. 역으로 이런 의문이 든다. 판사들이 10분, 20분만 더 귀를 기울인다면 억울함을 풀지 못해 법원 주변을 떠나지 못하는 이른바 ‘사법피해자’는 눈에 띄게 줄지 않을까.



 # 양승태 대법원장이 어제 취임식을 했다. 그는 취임사에서 “법관의 직에 있는 사람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고결한 인격과 높은 경륜을 갖춘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인식이 국민의 뇌리에 깊이 자리 잡게 하는 것이 최대 목표”라고 했다. 하지만 국민은 판사에게 그렇게 높은 수준의 인격까지 기대하지 않는다. 자신의 삶에 말 걸어주는, 좀 더 인간적인 모습의 판사면 된다. 같은 결론에 같은 형량이 나오더라도 판사들이 경청하는 자세를 보인다면 사건 당사자들도 신뢰를 갖게 될 것이다. 잘 들어주는 사람이 명의(名醫)다. 어디가 아픈지 잘 들어야 제대로 고칠 수 있기 때문이다. 판사도 다르지 않다. 대법원장이 바뀌어도 재판을 하는 건 판사들이다. 그들이 달라지지 않는 한 사법 개혁은 ‘옷 갈아입기’에 그칠 뿐이다.



 # 그날 인파 속으로 사라지는 A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가 어떤 길을 걸을지 알지 못한다. 다만 ‘판사의 업보’를 벗고 “나를 믿어주는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열심히 살겠다”는 다짐을 이루길 기원했다. 그리고 신문사로 발길을 돌렸다. 그때 문득 나도 기사로 업(業)을 짓고 있지는 않나, 다른 목소리에 얼마나 귀를 기울였나, 서늘한 무언가가 가슴을 스쳤다.



권석천 사회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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