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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감 너무나 큰 ‘아버지 미야자키 하야오’ 내 작품에 눈물 훔쳤죠

중앙일보 2011.09.28 00:10 종합 26면 지면보기



애니 ‘코쿠리코 언덕에서’ 개봉 앞둔 고로 감독



3D의 물결 속에서도 수작업을 통한 셀(Cell) 애니메이션을 고집하고 있는 ‘코쿠리코 언덕에서’의 제작사 스튜디오 지브리. 미야자키 고로 감독은 “셀 애니메이션의 예술적 우위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살아있는 한 변함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야자키 하야오



성공한 아버지를 둔 아들이 항상 행복한 건 아니다. 2006년 애니메이션 ‘게드전기-어스시의 전설’로 데뷔한 미야자키 고로(宮崎吾朗·44)도 그랬을 법하다. 그의 아버지는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70). 일본 애니메이션 산실인 스튜디오 지브리의 창립자이자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2)으로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을 받은 세계적 거장이다. ‘게드전기’는 일본에서 관객 600만 명을 넘는 흥행을 했다. 하지만 연출자에 대한 평가는 혹독했다. “아버지에 한참 못 미친다.” 5년을 숨죽이던 아들은 다시 도전장을 던졌다.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한 소년소녀의 풋풋한 러브스토리 ‘코쿠리코 언덕에서’(29일 개봉)다.









미야자키 고로



 미야자키 고로 감독은 중앙일보와 e-메일 인터뷰에서 아버지 얘기를 먼저 꺼냈다. “사춘기 땐 아버지와 비교되는 게 정말 싫었어요. 뭘 해도 ‘미야자키 하야오의 아들’이란 소리를 들었죠. 대학도 일부러 지방으로 갔어요. 거기선 모르겠지 싶어서요. 그런데 합격자 발표날 접수 창구에서 ‘네 아버지가 미야자키 하야오라면서?’ 하는 거에요. 이젠 운명이려니 해요.”



 그는 공원 조성·개발을 하는 건설 컨설턴트였다. 스튜디오 지브리와 인연을 맺은 건 98년 도쿄 외곽 미타카에 있는 지브리 미술관 종합디자인을 맡으면서. 2001년부터 4년간 관장으로 있던 그는 하야오의 오랜 파트너인 프로듀서 스즈키 도시오의 권유로 ‘게드전기’를 만들게 됐다. “평이 좋지 않아서 ‘이제 사람들 눈에 띄는 일은 그만 둬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아버지가 ‘마루 밑 아리에티’(2010)를 같이 하자고 했는데, 사실 엄두가 나지 않았죠.”



 그는 결국 가업(家業)으로 돌아왔다. 서정성이 물씬한 ‘코쿠리코 언덕에서’는 하야오가 기획과 각본을, 고로가 연출을 맡았다. 종전 직후인 53년을 떠올리며 88년 ‘이웃집 토토로’를 만들었다던 하야오는, 도쿄올림픽이 열렸던 63년을 떠올리며 이 영화를 기획했다. 지브리 작품 중 가장 복고풍과 향수가 진하게 느껴진다. 바다에서 죽은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하숙집을 운영하는 소녀 우미가 소년 슌과 나누는 첫사랑이 펼쳐진다. 두 사람은 오래된 동아리 건물 철거를 반대하는 운동을 하면서 서서히 가까워진다.



 제작과정에서 부자간 충돌은 없었을까. “없을 수가 없었죠. 제가 콘티를 짜고 있으면 아버지가 뒤에서 보고 있다가 ‘그건 아니지, 이렇게 해야지’ 지적해요. 스즈키 프로듀서가 나중엔 저한테 ‘다른 곳에 가서 일하는 게 좋겠다’고 해서 그렇게 했죠.” 70세 거장은 ‘코쿠리코 언덕에서’ 시사회에서 끝내 눈물을 훔쳤다. 우미와 슌의 부모들이 젊은 시절 기념사진을 찍는 장면에서다.



 “63년은 아버지가 대학 졸업 후 도에이 동화에 입사한 해에요. 개인적 추억이 떠오르지 않았을까요. 60년대는 일본이 고도 경제성장을 막 추진하던 시기죠. 지금처럼 배금주의가 만연하지 않았고, 아직 순수함이 남아있었죠. 지금의 자식세대를 있게 한 건 부모세대라는 얘길 하고 싶었어요. 과거를 버리곤 살 수 없는 게 사람이니까요.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아버지를 가진 저도 마찬가지고요.”



 그는 “아버지의 업적과 존재감은 너무나 크다. 그러니 내게 ‘미야자키 하야오의 후계자’라는 호칭은 당치도 않다”고 말했다. 마지막 질문으로 지브리가 만든 캐릭터 중 가장 좋아하는 3가지를 꼽아달라고 했다. 그는 ‘이웃집 토토로’의 토토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가오나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오무를 들었다 .



  기선민 기자



 

◆스튜디오 지브리=미야자키 하야오와 다카하다 이사오가 1985년 만든 애니메이션 제작사. ‘천공의 성 라퓨타’ ‘이웃집 토토로’ ‘반딧불의 묘’ ‘붉은 돼지’ ‘원령공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 숱한 히트작을 탄생시킨 애니메이션의 명가(名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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