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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청춘은 맨발이다 (111) 영화감독 신성일

중앙일보 2011.09.28 00:05 종합 27면 지면보기



“내 영화 올려달라” 무릎을 꿇었다



신성일의 감독 데뷔작 ‘연애교실’(1971)의 바닷가 멜로 장면. 신성일은 같은 해 연출작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을 당시 최고 흥행 극장이었던 국도극장에서 개봉했다.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배우와 감독은 역할이 다르다. 제작을 겸하면 얘기가 더 달라진다. 1971년 5월 ‘연애교실’으로 감독 데뷔를 했다. 그 해에 ‘어느 사랑의 이야기’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까지 내리 세 편을 연출했다. 감독을 하니 영화를 보는 눈이 넓어졌다.



 당시, 영화법의 폐해를 절감했다. 문공부 허가를 받은 18개 제작사만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 나 같은 경우 허가 받은 영화사의 이름을 빌려 제작을 해야 했다. 대명(代名) 비용은 작품 당 100만원이었다. 허가 받은 영화사는 영화법에 따라 1년에 2편 이상 제작하면 외화 수입 쿼터를 얻을 수 있었다. ‘연애교실’은 국도극장이 운영하는 한국영화사 이름을 빌려 상영 허가를 받았다.



 71년 가을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도 한국영화사 대명 작품이다. 녹음은 서울 남산 영화진흥공사에서 시작됐다. 배우와 성우가 모두 나왔는데 신영균만 보이지 않았다. 신영균의 매니저 정광석에게 물었다.



 “왜 그래? 무슨 사고 났어?”



 그가 우물쭈물하기만 하고 아무 말도 못했다. 그는 내 제작부장을 통해 “(신영균이) 녹음비 보내랍니다”라는 언질을 전했다. 당시 통상 녹음비는 출연료의 10~20%. 녹음이 끝난 후 지불하는 게 관례다. 내가 그간 빵집이며, 볼링장이며, 선거판에서 도와준 것인 얼마인가. 울화가 치민 나는 그 자리에서 “녹음비 30만원 보내”라고 지시했다. 신영균은 돈을 받자마자 현장에 도착했다.



 신영균·윤일봉·남궁원이 모두 출연한 이 작품은 국도극장에 상영될 예정이었으나 극장 측은 ‘신영균’ 때문에 상영할 수 없다고 통보해왔다. 사정을 알아보니 이랬다. 70년 ‘저것이 서울의 하늘이다’를 공동 제작한 신영균과 김희갑은 국도극장 개봉을 원했다.



 당시 국도극장은 최고의 극장으로, 개성 출신의 경영주 안 회장이 극장을 튼실하게 꾸려갔다 ‘저것이 서울의 하늘이다’는 중앙정보부의 지원을 받은 영화였다. 흥행성이 없다고 판단한 극장 측은 상영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아마도 중앙정보부와 친밀한 사이였던 김희갑이 중앙정보부를 통해 극장 측에 압력을 넣은 것 같다. 중앙정보부는 안 회장 아들인 안 상무를 불러다가 뺨까지 때리는 수모를 주었다. 극장 측은 울며 겨자 먹기로 그 영화를 올렸다가 일주일 만에 막을 내렸다. 화가 잔뜩 난 극장 측은 ‘신영균·김희갑’ 이름이 들어간 영화는 무조건 붙일 수 없다는 방침을 내렸다.



 국도극장에서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을 상영하려는 나로서는 암담했다. 안 상무는 난감해하는 나에게 아버지의 허락을 직접 받으라고 조언했다. 다음 날 새벽 안 회장의 혜화동 자택으로 찾아갔다. 내 얼굴을 보려고 그 집안 식구들이 몰려들었다. 나는 안 회장 앞에 큰 절을 올렸다. 그는 내가 온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내게 웃음 띤 얼굴로 “편히 앉아”라고 했다. 분위기를 보니 이미 내 승리였다.



 “아버님, 저를 보고 상영을 허락해주세요.”



 “알았어. 이번에 잘 만들었다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차 한 잔 얻어 마시고 그 집을 나섰다. 이 모두가 영화 감독의 몫이다. 배우 때는 생각하지도 못한 일이었다.



신성일

정리=장상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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