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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서 회화의 길을 찾다, 경계 허문 거장 리히터

중앙일보 2011.09.28 00:03 종합 27면 지면보기



청담동서 내달 23일까지 개인전
70년대부터 최근까지 30여 점



2차 대전 중 사망한 삼촌 사진을 흐릿하게 그리기도, 그 그림을 또 사진으로 찍기도 했다.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루디 삼촌’(2000).



1932년 구(舊) 동독 드레스덴에서 태어났다. 여기서 취직도 하고, 대학(드레스덴 미술 아카데미)도 나왔다. 스물셋에 파리를 여행했고, 4년 뒤 세계 최대 현대미술전 중 하나인 카셀 도큐멘타를 봤다. 그리고 고향을 등지고 서베를린으로 넘어갔다.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기 직전이었다.



 ‘생존 작가 중 최고’로 꼽히는 게르하르트 리히터(79) 얘기다. 그는 이렇게 서구 미술의 세례를 받았고, 사진을 회화적으로 재해석하며 세계적 화가로 이름을 날렸다. 매년 ‘100대 작가’를 선정하는 독일 경제지 ‘카피탈’은 2006년까지 3년 연속 리히터를 1위로 선정했다. 프랑스의 ‘아트 프라이스’는 2007, 2008, 2010년 전세계 경매에서 작품 판매 총액이 가장 많은 생존 작가로 그를 꼽았다.



 서울 청담동 마이클 슐츠 갤러리에서 리히터의 개인전 ‘추상 정신(abstract spirit)’을 연다. 70년대 작품부터 지난해 그림까지 30여 점이 나왔다. 2006년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에 비하면 소품이지만 거장의 시기별 작품을 충실히 모았다.



 ‘회화의 종말’을 얘기하는 20세기 후반, 그는 사진에서 길을 찾았다. 60년대 신문·잡지에 나온 사진을 흐릿하게 그렸다. 사진이라는 리얼리즘과 회화의 붓질을 결합한 리히터 특유의 그림은 그렇게 탄생했다. 당시 그는 이렇게 술회했다. “사진은 내가 이전에 미술과 연관시켰던 모든 관습적 규범 없이, 다른 비전을 전달해 준 이미지다. 거기엔 양식도, 구성도, 규범도 없었다. 그것은 순수한 이미지였다.”



 그는 이어 팔레트를 옮겨놓은 듯 색색의 물감을 두껍게 바른 그림, 이미지 위에 이미지를 덧그린 그림 등 그린다는 행위의 본질을 끊임없이 탐구해 나갔다. 97년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받았고, 2002년 뉴욕 현대미술관, 2004년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어떻게 ‘살아있는 거장’이 될 수 있었을까. 77년, 마흔다섯의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에 믿음을 가져야 하며,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내적으로 몰입해야 한다. 그것에 한 번 사로잡히면, 당신은 결국 회화를 통해 인류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어느 정도 믿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열정이 없다면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회화는 철저하게 바보 같은 짓이니까.” 10월 23일까지, 무료. 02-546-7955.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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