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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경로 의존의 재앙

중앙일보 2011.09.26 00:23 종합 34면 지면보기






김종윤
내셔널 데스크




걱정했던 폭탄이 떨어졌다. 부산·김해 시민들은 대피할 방공호도 없다. 떨어지는 폭탄을 그대로 맞아야 할 처지다. 세금폭탄이다. 폭탄이 왜 떨어지게 됐는지 따져보니 어이없다. 1조3123억원이 들어간 부산~김해 경전철이 지난 17일 개통했다. 지금까지 하루 평균 탑승객은 3만1200명. 처음 예측치(17만6358명)의 17.7%다. 이 추세면 부산·김해시가 경전철을 건설한 민간사업자에게 향후 20년간 물어줘야 할 적자운영비 보조금(MRG)은 연평균 10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이 돈, 모두 세금으로 메워야 한다. 이 세금, 모두 시민들 호주머니에서 나온다.



 경전철은 ‘경로 의존(path dependency)’의 재앙이다. 한 번 일정한 경로를 타면 나중에 그 방향이 비효율적이라는 걸 깨달아도 코스를 벗어나지 못하는 게 경로 의존성이다. 1868년 크리스토퍼 숄스가 QWERTY 방식의 영문 타자기 자판을 발표했다. 첫 자판이었다. 이후에 다른 효율적인 자판이 나왔지만 이미 제도로 굳어진 QWERTY 배열을 밀어내지 못했다.



 완공됐으나 창고에 들어간 용인 경전철이나 곧 완공될 의정부 경전철의 미래도 뻔히 그려진다. 엄청난 세금 낭비가 예상되는데도 공사를 멈출 수 없었다. 오히려 확대 재생산됐다. 규모가 커지고 시간이 흐르면서 궤도에 들어선 경전철의 브레이크를 밟는 건 불가능했다. 대재앙 경전철은 그렇게 진행됐다.



 경전철의 이런 교훈, 아직도 부족한가 보다. 곳곳에서 경로 의존의 오류를 답습할 움직임이 잇따르고 있어서다. 2018 평창 겨울올림픽은 한국인으로서는 자랑스러운 스포츠 축제다. 겨울스포츠의 불모지에서 우정과 화합의 불씨를 지피는 걸 생각만 해도 가슴이 뿌듯하다.



 하지만 겨울올림픽을 멋지게 치르는 것과 세금 낭비가 뻔히 예상되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 국토해양부가 앞으로 5년간 영동지역의 철도와 고속도로, 국도를 신설하거나 확충하기 위해 6조7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주말마다 주차장으로 변하는 영동고속도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제2 영동고속도로를 닦는 것은 일리 있다.



 하지만 인천공항에서 평창까지 고속철도로 연결하는 건 이해가 안 된다. 인천공항에서 KTX를 타고 68분이면 평창에 도착하는 게 그렇게 중요한가. 겨울올림픽 이후에 이 고속철도를 이용할 손님이 얼마나 될까. 국토부는 수요예측 수치조차 내놓지 않았다. 지금 필요한 건 정확한 수요분석이다. “올림픽인데 뭐 그런 걸…”하며 두루뭉술하게 넘어갈 일이 아니다. 만약 영동행 KTX가 올림픽 이후 파리만 날리면 제2의 경전철 못지않은 재앙이 될 수 있다. 올림픽은 국가의 위상을 높이지만, 거덜난 나라 곳간은 국민의 숨통을 짓누른다.



 경로를 바꾸는 데 너무 큰 비용이 들기 때문에 경로 의존성은 심화한다. 다행히 아직 열차는 철로에 오르지 않았다. 시동을 끌 시간은 남았다. 납세자의 지갑은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다. 주머니 털리는 납세자는 선거를 기다린다.



김종윤 내셔널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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