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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청춘은 맨발이다 (109) DJ의 방문

중앙일보 2011.09.26 00:14 종합 29면 지면보기



“김대중씨 만났지? 자금도 대겠다며”



1970년 9월 29일 신민당 대통령 후보 지명대회에서 YS를 누르고 후보로 당선된 DJ(왼쪽에서 둘째)와 그를 도운 김상현 의원(맨 왼쪽). [중앙포토]





내 인생에서 큰 변화의 시기가 찾아왔다. 영화산업의 쇠퇴, 정치의 유혹, 새로운 도전욕구 등이 한꺼번에 맞물렸다. 1970년 9월 30일 한밤중에 DJ(김대중 전 대통령)가 김상현 민주당 의원과 함께 이태원 우리 집을 찾아왔다. 그가 신민당 대통령 후보 지명대회에서 YS(김영삼 전 대통령)를 누르고 후보로 확정된 바로 다음 날이었다.



 DJ는 캠프에 합류해 달라며 문화예술정책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검열·규제 일변도의 문화정책에 불만이 컸던 나는 그의 예술에 대한 열정과 조예에 반했다. ‘이 사람이 대통령 되면 영화 할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오른쪽에 김상현 의원, 왼쪽에 신 동지, 전 유세 다니세”라고 외쳤다. 나는 정치자금까지 내겠다고 약속했다. DJ를 만난 이틀 후였다. 아내 엄앵란이 귀가한 내게 말했다.



 “여보, 아저씨(한무협 장군)가 전화 달라고 하시네요.”



 한 장군은 6·25 당시 육군대학 교육 중 박태준 포항제철 회장과 함께 대구 우리 집에서 하숙을 했다. 나는 평소 그를 ‘아저씨’라 부르면서 따랐다. 한 장군은 당시 국방부 전략정보국장으로 박정희 대통령에게 절대 신임을 받고 있었다.



 한 장군은 68년 김신조 일당이 경기도 송추 1군단을 뚫고 서울로 진입했을 때 송추 1군단의 한 사단지휘관을 맡았었다. 우리 부부는 김신조 일당의 남침 뉴스를 듣고 한 장군을 뵙기 위해 송추를 방문하기도 했다. 이후 한 장군은 소장으로 진급, 남산정보부서 3국과 5국을 거친 후 국방부 전략정보국장이 됐다.



 내 전화를 받은 한 장군이 뜻밖의 이야기를 했다. “조카, 차 몰고 국방부에 혼자 들어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곧장 차를 몰았다. 국방부 정문에서 부관인 대위가 전략정보국의 대형 회의실로 나를 안내했다. 영화 ‘패튼 장군’ 첫 장면에 등장하는 회의실을 연상시켰다. 맨 앞자리 중앙에 정복 차림의 한 장군이 앉아 있었다. 모자는 그 옆에 놓여 있었다. 내 인사를 받은 한 장군이 앉으라고 했다.



 “김대중씨 만났지? 정치자금도 대겠다면서.”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난 그 날 일을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DJ와 김상현 의원, 나와 엄앵란만 아는 사실이었다.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도청도 없던 시대였다. 그가 더 충격적인 이야기를 했다.



 “남산(중앙정보부)에서 달려는 걸 내가 책임진다고 하고 마무리했어.”



 난 듣고만 있었다. ‘단다’는 것은 매달아 고문한다는 중앙정보부의 속어였다. 박 대통령의 대선 경쟁자인 DJ를 만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고초를 당할 수 있는 시대였다. 한 장군이 남산 수사관들을 설득해 나를 지켜준 것이다.



 “포항 형도 사업 잘 되고, 공군 셋째 형도 별을 따야 할 것 아닌가?”



 포항 큰형은 박태준 회장의 포항제철을 배경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었고, 공군 파일럿인 셋째 형은 당시 중령이었다. 나 때문에 온 집안이 풍비박산할 수 있다는 무서운 경고였다. 난 꼼짝할 수 없었다.



 “아저씨, 알겠습니다. 앞으로는 보고 드리겠습니다.”



 ‘대체 어찌된 일인가’ 되뇔수록 혼란만 가중됐다. 집에 돌아왔지만 엄앵란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난 침대에 쓰러졌다.



신성일

정리=장상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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