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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나무·소나무 숲길 따라 한 시간…황금 들녘과 흑성산 절경 눈 앞에…

중앙일보 2011.09.23 04:41 6면



은석산에 오르다



천안시 북면 은지리에 위치한 은석산은 산세가 낮고 험하지 않아 넉넉히 한 시간이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 팔각정으로 향하는 길은 밤나무로 가득하다. 나무마다 제법 알이 굵은 밤이 열려 가을의 운치를 더한다.







등산이 좋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 최근 등산 인구가 늘었다지만 아직 꿈만 꾸고 있는 이들도 있을 터.



중앙일보 천안·아산은 굳이 새벽같이 일어나 관광버스에 몸을 싣지 않아도 오를 수 있는 지역의 가까운 산을 소개한다. 지난 9일 은석산에 올랐다.



글·사진=조영회 기자









은석산 팔각정 부근에서 바라본 전경. 흑성산과 독립기념관 일대가 조망된다.







박문수 유물관~팔각정



오전 9시10분. 천안시 북면 은지리에 위치한 어사 박문수 유물관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오늘의 산행은 이곳에서 출발해서 정상에 올랐다가 박문수어사묘와 은석사를 거쳐 계곡을 따라 내려와 출발점에 도착하는 코스다. 산행 도우미는 배수철 천안토요뫼산악회 고문과 오세구(천안 불당동), 황돈순·이병희(천안 봉명동)씨 부부.



유물관과 고령 박씨 종중재실 돌담 사이로 난 은행나무 심겨진 좁은 길을 따라 간다. 30m쯤 가서 오른쪽으로 집 모퉁이를 돌아 50m쯤 가면 이정표가 나온다. 여기서 왼쪽 은석산 정상 방향으로 오르막을 따라 간다. 3~4분쯤 가면 아스팔트 포장된 길 옆으로 잘 닦여진 전원주택 부지를 지나 산길이 시작된다. 밤나무와 소나무로 우거진 숲을 들어서니 시원한 바람과 함께 산 벌레 우는 소리가 우렁차다. 그늘진 숲길을 따라 오르면 돌로 된 계단을 지나고 곧 묘지 6기를 지난다. 3분 가량 오르면 평탄한 길이 시작되고 첫 번째 벤치에 도착한다.



벤치를 지나니 오르막이 가파르다. 돌 계단을 20m 오르면 왼쪽으로 벤치가 자리해 있고 다시 20m 가량 오르면 묘지 한 기를 지난다. 나무로 된 계단을 따라 굽이진 길을 오르면 벌거벗은(?) 묘가 나온다. 산길을 20분 가량 올랐을 뿐인데 벌써부터 확 트인 조망이 눈에 들어온다.



30m쯤 길을 오르니 벤치가 나오고 고인돌처럼 생긴 큰 바윗돌에 도착한다. 30m쯤 가면 나무계단 6개를 오르고 바위를 지나 다시 20m쯤 가면 계단이 나온다. 바윗길을 30m 정도 가면 하늘과 길 양쪽이 트인 평탄한 길이 200m 가량 이어진다. 바닥은 온통 돌로 가득하다. 왼쪽으로 구름에 싸인 흑성산의 절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산꼭대기를 제외한 나머지는 구름에 제 모습을 감춰 더욱 운치를 더한다. 날이 흐린 탓에 조망을 기대하지 않았던 터라 그 감동이 더하다.



20m쯤 오르면 평탄한 길을 지나 넓은 바위가 나온다. 바위 주위로는 굵은 밤이 달린 밤나무가 가득한데 그 풍경이 인상적이다. 바위를 지나 50m쯤 더 길을 오르면 이정표가 있고 팔각정에 도착한다.



팔각정~은석산 정상



팔각정에 오르니 황금빛으로 익어가는 들녘이 내려다 보인다. 정자를 지나면 곧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평탄한 길을 따라 작은 공원이 조성돼 있다. 이곳은 2001년에 산불 피해를 입었던 곳으로 2010년 5월 북면 지역의 우정산악회 회원과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등산로 조성사업을 벌여 영산홍과 주목, 매실나무 등 초목 1만 4000여 그루를 심고 나무계단 등을 정비했다.



완만한 능선을 따라 5분쯤 가면 갈림길이 나온다. 소나무 가 울창하게 숲을 이루고 있다. 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에 가득 실린 소나무 향이 코끝에 상쾌하게 와 닿는다. 바닥에 쌓여 있는 솔잎과 함께 발에 밟히는 부드러운 흙이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거리표기가 안 된 이정표. 갈림길에 이정표가 없는 곳도 있어 정비가 필요하다.



100m쯤 지나면 운동기구와 평상이 놓여 있다. 이곳에서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짐을 풀었다. 식사를 하려는데 제법 굵은 빗방울이 떨어진다. 서둘러 간이 천막으로 비를 피할 공간을 만들고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비가 그쳤다. 그래도 하늘은 잔뜩 어둡다. 금방이라도 다시 퍼부을 기세다. 길을 서둘렀다. 30m쯤 가니 갈림길이 나온다. 은석사와 박문수 어사묘, 정상 방향으로 향하는 길이다. 이정표는 거리 표시가 안 돼 있다. 오른쪽 어사묘 방향으로 30m쯤 가니 영성군 박문수 어사의 묘가 나온다. 커다란 봉분 앞에 묘비와 망주석, 장군석이 함께 자리해 있다. 다시 길을 돌려 정상방향으로 향했다.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 30m쯤 가면 다시 내리막이 이어지고 15m쯤 지나면 오르막길이다. 경사가 심한 바윗길을 지나 5분쯤 가면 정상에 도착한다. 정상을 알리는 표지석(455m)이 있고 작성산(507m)과 이어지는 개목고개(1㎞)로 향하는 이정표가 있다.



은석산 정상~은석사~너럭바위~박문수 유물관



하산하는 길은 정상에서 작성산으로 향하는 코스와 은석사를 통해 다시 내려가는 코스가 있다. 길을 내려와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에서 은석사 방향으로 향했다. 묘소를 지나면 나무계단을 지나 평탄하고 우거진 숲길이 이어진다.



5분쯤 가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팔각정 방향으로 향하는 길과 만난다. 합판에 ‘성길로’라고 쓰인 이정표가 있다. 길을 따라 5분 가량 내려가면 은석사에 도착한다. 입구의 약수터 옆으로 코스모스와 나팔꽃이 환하게 피어있다. 그 옆으로 수령이 550년 된 커다란 팽나무가 눈길을 끈다.



절을 지나 내려가려니 다시 비가 내린다. 하산할 때까지 그치지 않을 기세다. 준비해간 우산을 꺼내 들고 길을 나섰다. 들꽃이 피어있는 길을 지나니 작은 계곡이 시작된다. 빗소리와 어우러진 물 흐르는 소리가 정겹다. 2분 정도 가면 벤치 2개 를 지나 좁은 계곡을 건넌다. 10분쯤 내려가면 벤치를 지나 계곡 오른쪽으로 커다란 너럭바위가 나온다. 다시 10분쯤 내려가면 벤치 두 곳을 지나 하늘이 트인 곳에 ‘그리운 어머니’란 시비가 있는 묘지가 나온다. 묘지를 지나 5분 정도 가면 오른쪽으로 작은 연못과 만난다. 빗방울 머금은 연꽃이 제법 운치 있다. 연못 옆에 있는 밭에 들깨와 콩이 자라고 있다. 밭을 지나니 산행 시작점에서 만난 갈림길이 나온다. 직진해서 3~4분쯤 가 오후 2시10분 박문수 유물관에 도착했다.



은석산 다른 산행코스



은석산(455m)은 천안시 북면 용암리와 은지리, 매송리와 병천면 병천리와의 경계에 위치해 있다. 산행코스는 은지리에서 출발해서 정상에 올랐다가 은석사로 하산하는 길 외에도 정상에서 개목고개를 지나 작성산으로 향하는 코스(4.5㎞·2시간)와 은석산 정상에서 병천면 서원 부락으로 하산하는 코스(3.9㎞·90분)가 있다.



산행을 함께한 오세구씨는 “은석산은 산세가 험하지 않아 등산 초보자도 쉽게 오를 수 있다. 하지만 갈림길에 이정표가 없는 곳이 있고 구간별 거리표시가 안 돼 있어 초행일 경우 길을 헤매기 쉽다”며 아쉬움을 전했다.



[은석산 돋보기] 탐관오리 척결에 앞장선 암행어사 박문수의 혼 깃들다









은석산 정상부에 있는 박문수 어사의 묘.



은석산 정상 부근에는 암행어사로 잘 알려진 박문수의 묘가 자리해 있다. 박문수(朴文秀)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호는 기은, 본관은 고령이며 자는 성보, 시호는 충헌이다.



숙종 17년(1691) 9월 진위현 현평대군에서 학자 항한(恒漢)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경종 3년(1723) 문과에 급제해 사관이 됐고, 병조정랑에 올랐다. 노론의 집권으로 삭탈관직됐다가 영조 3년(1727)에 사서로 다시 등용됐다.



박문수는 지혜가 명석하고 기지가 뛰어나 영조의 신임을 받아 영조 3년에 고향을 떠난 농민들을 다시 제 고장으로 돌아가게 하는 임무를 맡은 안집어사에 차출됐다. 곳곳을 돌아 다니며 억울한 백성들의 고통을 살피고 지방관리들의 수탈과 횡포를 뿌리뽑아 명성을 떨쳤다. 영조 4년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자 오명항의 종사관으로 출전해 난을 평정한 공으로 영성군에 봉해졌다.



영조 5년(1729) 영남절도사로 있을 때 함경도지방에 수재가 있을 것을 미리 예상하고 영남 제민창에 있던 조 3천 석을 보내 10여 고을의 수재민을 구했다. 후에 함흥 만세교 옆에 북민비라는 송덕비가 세워졌다.



왕명을 받고 여러 번 어사로 나가 탐관오리를 숙청하고 어려운 백성들의 구제에 힘썼으며, 1741년 어영대장이 돼 국토방위에 심혈을 기울였다. 영조 25년(1749) 호조판서로 있을 때 다른 신하들과 함께 『탁지정례』를 출판해 국가경비를 절감했으며, 죽은 뒤에는 벼슬이 영의정으로 높여졌다.



박문수는 이처럼 암행어사 직책을 맡았을 때 곳곳을 떠돌며 억울하게 짓밟히는 민권을 옹호하고 구제하기에 힘썼다.



은석산과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다. 박문수가 병천 지방에 머무를 때 지관에게 사후 묻힐 묏자리를 알아봐 달라 하자 지관이 북면 은석산 중턱에 장군대좌형 명당이 있는데 이 곳은 장군만 있고, 병졸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이에 박문수가 꾀를 내 묘 터 앞에 시장을 개설해 오가는 사람들을 병졸 삼았으나 일제가 시장 터가 좁다 해서 옮기려 하자 고령 박씨 후손들이 주재소로 몰려가 농성을 벌였지만 결국 시장이 이전돼 후손들에게 발복이 끊어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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