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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역시나’ 기밀유출죄 처벌

중앙일보 2011.09.23 00:23 종합 33면 지면보기






이창무
한남대 교수·형사사법학




춘추전국시대 오왕 합려가 손자병법으로 유명한 손무를 초청해 물었다. “궁녀들도 병법대로 지휘할 수 있겠소.” 손무는 가능하다고 대답했다. 훈련에 들어가자 궁녀들은 손무의 지휘에 따르지 않고 깔깔거리기만 했다. 손무는 군법에 따라 오왕이 애지중지하던 후궁 두 명의 목을 베었다. 기겁을 한 궁녀들은 마치 오랜 훈련을 받은 군인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수천 년 전 고사(故事)지만 아직도 일벌백계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면 약방의 감초처럼 인용되곤 한다.



 회사 기밀을 중국의 경쟁사로 빼돌리려다 구속됐던 전 삼성전자 중국인 수석연구원이 지난 6월 말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판결을 받고 풀려났다. 이 연구원은 가전제품의 핵심인 소음방지기술과 향후 10년간 백색가전 제품의 추세분석, 경영전략 등을 빼돌렸다. 경쟁업체가 확보했다면 업계 판도가 바뀔 수 있는 중요한 기밀이었다. 그러나 그는 실형을 면했다. 절도죄가 아니라 6개월 이하의 선고도 가능한 부정경쟁 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적용받았기 때문이다.



 과학기술 수준이 국가경쟁력을 결정하는 세상이다. 한때 유전자 검사 시장 점유율 60%를 자랑하던 한 바이오벤처 기업이 영업비밀 유출로 인해 하루아침에 폐업에 이르게 되는 등 산업기밀 유출은 기업의 존폐와 직결된다. 때문에 물건을 훔치거나 사람을 폭행하는 등의 일반 범죄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는 사법부가 기업과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는 산업기밀 유출에 대해서는 유독 온정주의적 태도를 보이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피해상황이 명백한 일반범죄와 달리 정확한 피해를 산정하기 어려운 점 등의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산업기밀유출과 같은 범죄의 해악성은 다른 어떤 강력범죄 못지않게 심각하다.



 최근 전직 공군참모총장이 미군 군수업체에 빼돌린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는 군사기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군사기밀보호법 위반과 관련된 판결은 2004년부터 26건에 40명에 이르지만,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고 모두 집행유예나 선고유예 등으로 풀려난 것으로 나타났다. 법원은 “국가안보에 현실적인 위험을 초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실형을 선고하지 않았다. 반면 미 해군 정보국에 근무하던 재미교포 로버트 김은 대북 정보를 주미 한국대사관에 넘겼다는 이유로 징역 9년에 보호관찰 3년을 선고받았다. 산업기밀이나 군사기밀은 우방이라고 봐주는 법이 없다. 국가의 안위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물론 형량만 늘리는 게 능사는 아니다. 그러나 산업기밀이든 군사기밀이든 간에 기밀을 유출하면 반드시 적발된다는 인식을 범죄자들에게 심어주어야 한다. 그래야 일벌백계의 처벌도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관대한 처벌이 용인되는 것은 아니다. 처벌의 강도는 곧 그 범죄의 심각성을 반영한다. 군사기밀이나 산업기밀이 진정 중요하다면 이렇게 중요한 기밀을 빼돌린 사람들에게는 추상(秋霜)과 같은 처벌이 내려져야 한다. 그래야 경각심을 갖게 되고 함부로 빼돌리지 않는다.



이창무 한남대 교수·형사사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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