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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안철수의 ‘바보’ DNA

중앙일보 2011.09.23 00:19 종합 34면 지면보기






서경호
경제부문 차장




“내가 직업을 가벼이 바꾼 것으로 오해하지 말아 달라. 나는 한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끝까지 간 다음 다른 곳으로 옮겼다.”



 3년 전인 2008년 가을 안철수 교수는 KAIST 첫 강의에서 이런 말을 했다. 언제나 한 분야에서 ‘끝장을 본 뒤’ 다른 분야를 개척했다는 얘기였다. 당시 그는 기업 경영에서 한 발 물러나 교수로 전직해 화제가 됐었다.



 첫 강의를 지켜본 뒤 꽤 오랫동안 그를 인터뷰하면서 새로운 사실을 하나 알게 됐다. 인터뷰를 많이 해도 자기 기사나 자신이 출연한 방송을 잘 안 본단다. 그는 “인터뷰가 실제보다 과장되게 나오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항상 자신이 모자란다고 생각하고, 조그만 성공에 만족하지 않으며, 방심하지 말자는 게 삶의 원칙이라고 했다. 인터뷰를 하는데 정작 당사자는 기사를 안 본다니, 기자 입장에선 좀 맥 빠졌다. 기사(중앙SUNDAY 2008년 9월 7일자)가 나간 뒤 나중에 그에게 직접 물었더니 진짜였다. 스스로 낮추기 위해 자기 기사까지 읽지 않는 그가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대권 후보로까지 거론될 정도로 몸값이 치솟았으니 참 아이러니다.



 안 교수는 과연 정치를 할까. 여론과 유·불리를 따지는 정치공학적인 분석보다 그가 했던 말과 행적을 되짚어보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는 정치인보다 백면서생(白面書生) 쪽에 가깝다. 권력의지도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다른 의지는 있다. 무엇인가를 세상에 남기고 싶어한다. 그게 의미 있는 삶이라고 믿는다. 그는 “내세를 믿지는 않지만 좀 더 의미 있고 건강한 가치를 지키며 살다가 ‘별 너머의 먼지(star dust)’로 돌아가는 게 인간의 삶”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의사에서 컴퓨터 쪽으로 돌아선 이유는 의학계엔 이미 많은 인재가 있지만 컴퓨터 바이러스 쪽은 그 혼자뿐이었기 때문이다. 사회에 더 기여할 수 있는 쪽을 선택했다.



 그는 자신의 단점을 잘 알고 있다. 뜻 맞는 이와 깊게 사귀는 성격이어서 대인관계의 폭이 좁다. 더디고 미련한 구석도 있다. 바둑알을 잡기도 전에 50권 정도의 바둑 책부터 사서 공부했다. 의대 시절 남들이 ‘족보’라고 불리는 문제집을 공부할 때 그는 교과서를 봤다. 기초가 튼튼해야 나중에 속도를 낼 수 있다고 믿는다.



 지나치게 원칙을 고수한다는 점에서 ‘바보’ 같기도 하다. 미국 회사가 거액을 주고 회사를 팔라고 했지만 거절했다. 2000년 닷컴 열풍이 불 때 기업공개(IPO)를 하라고 주변에서 권했지만 안 했다. 회사의 핵심 역량으로 돈 버는 게 아니면 결국 회사에도 도움이 안 된다고 봤다. 안철수연구소의 상장은 벤처 거품이 꺼졌던 2001년 ‘9·11 테러’ 다음 날이었다.



 안 교수의 인기에는 이런 ‘바보’ 코드가 깔려 있다. 정치력과 지도자 자질을 검증하고 국정철학부터 들어 보자는 주장은 분명 옳다. 하지만 ‘바보’ 코드 앞에선 왠지 빛 바랜 느낌이다. 어쨌거나 무당파(無黨派) 교수 하나가 정치권을 뒤흔드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참으로 유쾌·상쾌·통쾌했다.



서경호 경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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