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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강원랜드 맴도는 ‘카지노 앵벌이들’

중앙일보 2011.09.23 00:19 경제 8면 지면보기






허정옥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위원




지난여름, 100여 명의 청소년이 세숫대야를 들고 강원랜드 일대로 봉사활동을 떠났다. 도박중독으로 얼룩진 마음들을 ‘발 씻기’를 통해 깨끗이 닦아주려는 것이었다. 비 내리는 오전 6시, 가족들도 더 이상 찾지 않는 도박중독자들을 밤새워 기다리며 아이들은 빗물처럼 울었다. 도박에 빠진 철없는 어른들이 불쌍해서다. 그중에는 미국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라스베이거스에서 전 재산을 날려버린 탓에 한국으로 보내진 아이도 있었다. 이 아이들의 세족식이 도박에 빠진 어른들 한 사람의 발길이라도 되돌릴 수 있기를 염원해 본다.



 강원랜드 주변에 가산을 탕진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카지노 앵벌이’는 1000여 명으로 추정된다. 감사원에 의하면 빈번한 카지노 출입으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된 600∼700명이 여전히 카지노를 맴돌고 있다. 이들의 끝은 어디일까. 지난 5년간 이 일대에서 자살한 사람이 30명을 넘어선다니, 결국 ‘도박은 죽어야 끝이 난다’는 속설을 입증하는 셈이다.



 이처럼 지독한 도박중독의 문제는 카지노만의 얘기가 아니다. 도심 한가운데서 호객을 하는 장외발매소야말로 그 온상이다. 마사회가 운영하는 장외발매소의 도박중독 유병률은 82.9%로, 국내 평균 도박 유병률(6.1%)보다 13배 이상 높다. 그래서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는 ‘장외발매소의 신규 설치를 불허하고 현재의 장외발매소도 단계적으로 축소한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하지만 마사회는 장외발매소의 무리한 이전 및 은근한 확장으로 여론의 꾸지람을 자초하고 있다.



 왜 이렇게 사행사업체들이 국민의 소리에 귀 막고, 고객의 신음에도 눈감는가. 단적으로 말해 사감위의 감독 기능이 권고에 그칠 뿐 법적 구속력이 없기 때문이다. ‘잘못했다’고 꾸중을 들으면 그만, 회초리가 없는 이유다.



 원래 사감위는 사행산업의 급속한 확산성과 파급력, 단속의 어려움 등을 감안해 설립되었다. 하지만 카지노·경마·경륜·경정·복권·체육진흥투표권(스포츠토토) 등 6개 사업체가 만들어내는 도박중독 유병률은 선진국보다 두세 배나 높다. 무엇보다도 사행산업의 과도한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사행산업의 총 규모가 일정선을 넘지 않도록 설정한 총량제가 계속 무너지고 있다. 게다가 이들로 하여금 ‘책임도박 시대를 열 수 있는 열쇠’로 고안된 전자카드도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이제는 더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사행산업이 건강하게 지속하려면 첫째, 사감위법을 시급하게 개정해 실질적인 도박중독 예방 및 치유 기능을 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현행 중독예방·치유센터를 ‘국립도박문제관리센터’로 법인화해야만 한다. 둘째, 신규 사행산업 진입 등에 대해서는 ‘사전협의제’를 도입해야 한다. 사감위와 관계부처가 공동의 방화벽을 구축해 과열되는 사행산업의 확산을 사전에 차단해야만 한다. 셋째, 사감위 스스로가 불법사행산업의 바다로 뛰어들어 감시·단속의 레이더를 작동시켜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제도화보다 한발 앞서야 할 것은, 사행산업 현장이 ‘잃어버린 양 한 마리도 찾아 나서는 자세’로 변해야 한다. 사행사업체들이 ‘무릎 꿇고 고객의 발을 씻는 마음’으로 중독자들을 보살펴야만 하리라. 지난여름 동안 잎사귀가 무성하도록 땀 흘린 사감위법 개정 노력이 올가을부터는 비바람을 막아주는 우산처럼 새들도 깃들이는 큰 나무가 되기를 소망한다.



허정옥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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