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영희 칼럼] 남북관계 복원 마지막 기회다

중앙일보 2011.09.23 00:18 종합 35면 지면보기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우리가 남북대화에 목말라할 이유가 없다는 강경자세를 고수하던 통일부 장관이, 그래도 말길을 다시 터야 한다는 대화론자로 교체되었다. 통일부 장관이 바뀌었다고 대북정책의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성급할지 몰라도 장관 교체의 시기가 의미심장하다. 북한은 6자회담 여는 데 총력을 쏟고, 그 과정으로 남북대화를 원한다. 북한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북·미관계 정상화와 평화협정 체결을 통한 체제의 안전 확보다.



 북한과 미국은 의미 있는 접촉들을 쌓아간다. 내년 봄 이전에 평양교향악단의 미국 순회공연이 실현될 전망이다. 북·미 2차 고위급회담도 임박했다. 재미 한국인 이산가족들의 가족상봉도 성사를 눈앞에 두고 있다. 중국은 진작부터 6자회담 재개에 적극적이고, 러시아는 남북한을 종단하는 시베리아 가스관으로 막힌 남북관계를 뚫는 데 역할을 하려고 한다. 통일부 장관 교체는 이런 일련의 북한 포용 노력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어서 “뭔가 있을 것”이 기대된다.



 현인택 전 장관은 북한이 천안함에 대해 사과하지 않으면 남북대화와 대북 지원은 없다는 요지부동한 원칙론을 포기하지 않았고, 이명박 대통령의 다른 강경파 참모들도 거기 동조했다. 그러는 사이에 정상회담까지 시야에 둔 고위급회담 재개를 위한 비공식 접촉과 구상들은 빛을 보지 못했다. 지난 6월 청와대·통일부·국정원 관리들과 북한의 국방위원회 중견 간부들이 만난 상하이 비밀회담의 내용을 북한 참석자들이 폭로하는 엽기적인 사건이 일어난 것도 포괄적인 대화의 틀과 진지한 대화 의지 없이 회담장에 불쑥 나간 경거망동의 필연적인 결과였다.



 류우익 후임 장관은 무엇이 다른가. 그는 대북정책의 원칙은 지키면서 신축성 있는 방법으로 대화의 물꼬를 트겠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남북관계에 대한 그의 기본인식이 현실적이고 전향적인 것이다. 그는 지금의 경색국면을 타개하려면 행동공간이 넓은 남한이 북한이 나올 공간을 열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 말을 쉽게 풀이하면 모든 면에서 형편이 나은 남한이 기본을 지키는 한도 안에서 양보를 하자는 것이다. 남북한의 국력이야말로 요즘 유행하는 말로 비대칭의 전형이다. 그런데도 외교라인의 강경론자들은 북한을 남한과 대등한 입장에 놓고 하나 주고 하나 받는 상호주의에 집착했다. 개인관계나 국가관계에서 약자는 마음의 상처를 받기 쉽고, 양보가 굴복으로 비칠세라 허세를 많이 부린다. 여유 있는 쪽이 먼저 손을 내밀고 양보를 해야 매듭이 풀린다.



 북한은 내년에 김일성 탄생 100주년과 강성대국 입문이라는 국가적인 잔치를 앞두고 돈 쓸 데가 많다. 잔치 비용과 백성들에게 줄 선물로 식량과 생활필수품을 비축해야 하는데 북한의 경제력으로는 안 된다. 국제사회의 지원이 절실하다. 북한은 6자회담 재개로 평화에 관심이 있는 나라라는 이미지를 국제사회에 확산시켜야 한다. 발리와 베이징에서 북한 외상과 차관들이 한국과 미국 고위 관리들을 연쇄적으로 만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한국과 미국은 6자회담 재개에 앞서 북한이 우라늄 농축 중단, 미사일 모라토리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의 복귀 같은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한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1일 유엔 총회 연설에서 북한에 핵무기 포기의 구체적인 조치를 요구하고, 북한이 계속 국제법을 어기면 더 큰 압박을 받고 고립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오바마 연설의 북한 부분은 미지근하기 짝이 없다. 형식적으로 한 줄 집어넣은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지금 북·미 간에 진행 중인 여러 가지 접촉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면 그것보다는 구체적이고 강력한 촉구와 경고가 나왔을 것으로 보인다. 비핵화에 대한 한·미 간의 인식 차를 느낀다. 이용호 북한 외무성 부상은 최근 베이징의 한 ‘토론회’에서 한국과 미국이 제시한 조건에 대해 6자회담이 열리면 새로운 일괄 안을 내겠다고 말했다. 우라늄 농축활동은 경수로 연료를 얻는 평화적인 목적을 위해서라고 주장하는 북한은 일괄 안에서 우라늄 농축 중단의 조건으로 다시 경수로 제공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지금이 이명박 정부에는 남북관계 개선의 마지막 기회다. 전략적 인내로 포장된 무위(無爲)의 정책은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무책임한 정책이었다. 류우익 장관의 말대로 정상회담도 배제할 이유가 없다. 정상 간의 통 큰 합의가 꼭 몽상가의 꿈은 아닐 것이다. 임기 중에 남북 평화공존의 궤도를 까는 것이 이명박 정부의 마지막 책임이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