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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의 ‘골프 비빔밥’ <31> 좁쌀 라운딩, 통 큰 라운딩

중앙일보 2011.09.23 00:07 경제 19면 지면보기








다른 사람들과 라운드를 하다 보면 그 사람의 실력이나 노력에 비해 과도한 행운이 거듭된다 싶은 경우가 있다. 그럴 때 그 행운을 당연시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하루 이틀 라운드한 것도 아니고 웬만큼 골프를 한 사람이라면 척 보면 알 수 있는데 그것이 자신의 실력인 양 우쭐거리거나 심지어 진짜로 자신의 실력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어쩌다 불운이 닥치면 “제게 어찌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하면서 호들갑을 떤다.



가끔은 화를 내는 사람도 있다. 이런 경우를 접하면 참 어이가 없다. 멋진 샷이 나왔을 때 부러움이 담긴 동반자들의 칭찬에는 감사를 게을리하면서 실수가 나왔을 때 한마디 거들면 그 말이 뼈에 사무친다. 심한 사람은 복수를 결심하기도 한다.



라운드가 끝나고 목욕탕에 들어앉아 천지신명이 도와 OB 말뚝 맞고 들어온 샷, 부처님이 도와 핀에 붙은 샷, 하나님이 도와 들어간 롱 퍼팅 같은 것들은 계산에서 다 빼고 실수의 개수나 불운의 숫자만을 세면서 ‘앞으로 그런 실수 몇 개만 줄이고 오늘 같은 불운만 없으면 나도 싱글’이라며 참으로 ‘이상한 나라의 산수’를 하고 있다.



장점보다 단점이 먼저 보이고, 행운보다 불운이 더 많아 보이고, 잘한 일보다 실수가 마음에 더 오래도록 남는 일, 골프 칠 때만 그런 것도 아니어서 십분 이해는 가지만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서는 도무지 사태를 해결하고 난관을 이겨 나갈 실마리를 찾을 수 없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귀한 인연도 차분하게 보지 않으면 스쳐 지나는 무상한 관계로 보일 뿐이고, 넘치는 행운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보지 않으면 그냥 하나의 일상이거나 사건에 그치는 것 아닌가.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평소 실력에 비해 영 샷이 안 되고 불운이 겹쳐 스코어가 엉망이 돼 있는데도 덤덤하고 묵묵한 사람이 있다.



전반 9홀이 거의 다 끝나가는 데도 태연하게 아직 후반이 남아 있는데 뭘 그러느냐는 식이다. 오래도록 골프를 치다 보면 그런 사람이 결국 자신이 스코어를 지켜내는 것을 심심찮게 목격하게 된다는 거다.



‘행운이 거듭되면 불운이 오고 있음을 경계해야 하고, 불운이 거듭되면 이제 새로운 반전이 있으리라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뻔한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기쁠 때 기뻐하고, 슬플 때 슬퍼하는 천진한 발상의 골프를 깡그리 무시하자는 것도 아니다.



행운과 불운이라고 하는 그런 결과론적인 생각으로부터 제발 좀 벗어나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거다. 한 샷 한 샷의 희비가 아니라 한 번의 라운드 전체를 조망하는 자세 말이다. 혹은 자신의 골프 전체를 논하는 ‘통 큰 골프’를 제안하는 것이다. 결과야 어떻든 그냥 상황을 읽는 데 최선을 다하고 선택에 신중한 골프 말이다.



한 샷 한 샷에 몰입하면서 뚜벅뚜벅 힘차게 나가는 골프가 더 멋지지 않으냐는 제안을 하는 거다. 멋진 샷이 나왔을 때 기분 좋은 것이야 너무 당연한 것이지만 그 마음을 조금은 아껴 둬야 한다. 그래야 실망스러운 샷이 나왔을 때 그 샷을 딛고 일어설 힘이 생기는 거 아닐까.



 마음골프학교(www.maumgolf.com)에서 김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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