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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의 골프 다이어리 <31> 재능 많은 매킬로이를 보며 걱정스러운 까닭

중앙일보 2011.09.23 00:07 경제 18면 지면보기








로리 매킬로이(사진)라는 천재 선수가 처음 등장할 때 어쩐지 익숙했다. 어디서 본 것 같은, 혹은 많이 들어본 선수 같다는 기시감이 들었다. 어린 선수라 그를 알 수 있는 가능성이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분명 뭔가 있었고, 그게 뭔지 알 수 없어 답답하기도 했다.



아일랜드 여행을 하면서 매킬로이의 홈 코스를 방문했다. 거기서 그 해답을 풀었다. 매킬로이의 집은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인근의 홀리우드라는 마을에 있다. 그의 홈 코스도 같은 이름을 썼다. 홀리우드(Holywood) 골프장에 들어갈 때 영화의 메카 할리우드(Hollywood) 생각이 났다. 매킬로이에 대한 데자뷰를 만든 나의 기억은 영화였다.



캐빈 코스트너와 르네 루소가 주연한, 골프 영화에서 최고 명작 중 하나로 꼽히는 ‘틴컵’(1996)의 주인공 이름이 로이 매카보이다. 이름이 비슷해 로리 매킬로이가 낯설지 않았던 것 같다.



영화에서 매카보이는 실력은 뛰어나지만 지나치게 공격적인 골프를 해서 실패하고, 연습장 프로로 별 목표 없이 빈둥거리며 사는 왕년의 유망주로 나온다. 매카보이에겐 과거 라이벌이자 투어의 정상급 선수가 된 친구가 있다. 투어 프로는 자신의 여자친구 몰리를 매카보이에게 보내 골프 레슨을 받게 한다. 매카보이가 몰리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것이 영화의 발단이다. 친구에게 경쟁심을 느끼게 된 매카보이는 그의 캐디로 대회에 나갔다가 소극적인 경기를 한다며 친구를 면박 주다 해고된다.



매카보이는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친구를 이기기 위해 사라졌던 열정에 다시 불을 붙였다. 그는 칼을 갈고 US오픈 예선에 나가 멋지게 통과했다. 그러나 몰리는 그를 외면했고, 매카보이는 본 대회를 앞두고 깊은 슬럼프에 빠졌다. 1라운드 83타를 치고 나선 거의 포기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톱 프로 선수의 비인간적인 면모를 알게 된 몰리로부터 정신적인 도움을 받고 둘째 날 62타를 치는 정말 영화스러운 반전을 보여줬다.



영화 같은 반전은 매킬로이도 자주 하고 있다. 지난해 디 오픈에서 1라운드 메이저대회 최저타 타이인 63타를 쳐 세상을 놀라게 하더니 2라운드에서 80타를 치는 것 같은 일이다. 그는 올해 마스터스에서 마지막 날 무너지더니 바로 다음 메이저 대회인 US오픈에서 최저타 기록을 내면서 우승했다. 드라마틱한 선수다. 이후 매킬로이는 가십에 자주 등장한다. 매킬로이는 최근 열린 영국-아일랜드와 나머지 유럽 대륙의 국가 대항전인 세베 트로피에 참가하지 않아 논란이 됐다. 세베 트로피는 유럽 골프의 정신적 지주였던 세베 바에스트로스를 기념해 만든 대회다. 세베가 최근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올해 대회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매킬로이는 세베컵을 TV로 보면서 영국-아일랜드 팀이 아니라 유럽 대륙의 토마스 비욘을 응원했다고 트위터에 써 동료들을 언짢게 했다. 매킬로이는 대회 기간 중 여자 테니스 세계랭킹 1위이자 여자친구인 카롤린 워즈니아키와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매킬로이는 여자친구와 국적(덴마크)이 같아서 비욘을 응원한 것 같다. 세베컵에서 토마스 비욘에게 패한 리 웨스트우드는 “넌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이냐”며 트위터로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그는 올해 디 오픈에서 날씨 탓을 했고, 아이리시 오픈에선 자신의 캐디를 비난한 방송 해설자에게 “투어에서 성적을 내지 못한 해설자는 비난할 자격이 없다”는 말을 해서 구설에 올랐다.



영화 속 매카보이는 US오픈에서 우승 다툼을 한다. 4라운드 파 5인 마지막 홀에서 버디를 잡으면 우승, 파를 하면 연장에 갈 수 있었다. 그러나 무리하게 2온을 시도하다 공을 물에 빠뜨렸다. 기회는 남아 있었다. 그린 근처의 드롭존에서 웨지로 핀에 붙여 파를 잡으면 연장에 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화가 나 드롭존으로 가지 않고 그 자리에서 고집스럽게 우드로 그린을 공략하다 다섯 차례나 공을 물에 빠뜨렸다. 결국 그는 여섯 번째 시도에서 홀인을 해 관중들의 환호를 받았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매카보이는 자신이 무리하게 경기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멋진 재능을 가진 매킬로이가 영화 속 매카보이 같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까. 아일랜드인들은 매킬로이를 매우 걱정하고 있었다.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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