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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리포트] 버냉키, 50년 묵은 ‘케네디 트위스트’ 춤추다

중앙일보 2011.09.23 00:02 경제 2면 지면보기



케네디 대통령, 경제 활력 주려 사용한 카드
뾰족한 대안 없는 버냉키가 다시 꺼내
세계 증시 일제히 하락 … 시장 반응은 싸늘



존 F 케네디



존 F 케네디는 1961년 뭔가를 보여줘야 했다. 젊음과 패기를 앞세워 당선됐지만 그가 넘겨받은 미국 경제는 심각한 침체였기 때문이다. 하루빨리 경제를 되살려야 했다. 다급한 그에게 당시 클래런스 딜런 재무장관과 윌리엄 마틴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등이 ‘옆구리 찌르기(Operation Nudge)’라는 대책을 올렸다. 금융통화정책으로 경제의 옆구리를 찔러 활력을 되찾도록 해보자는 대책이었다.



 케네디는 즉시 시행을 명령했다. 월가를 담당하는 뉴욕 연방준비은행이 동원됐다. 단기 채권을 팔고 장기 채권을 사들였다. 케네디 이미지만큼이나 신선하게 받아들여졌다. FRB 역사상 처음으로 장·단기 금리의 성격을 활용한 정책이어서다. 이전까지 FRB는 두 금리의 성격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돈을 풀거나 조였다.











 케네디 시대의 FRB 정책은 ‘트위스트 작전(Operation Twist)’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장·단기 채권에 대해 엇갈리는 스텝(대응)을 밟는 모습이 당시 유행한 춤 트위스트와 닮았기 때문이다.



 트위스트 작전은 이후 50년 동안 사실상 용도폐기됐다. 이런 헌 칼을 벤 버냉키(58) FRB 의장이 22일 새벽(이하 한국시간) 다시 꺼내 들었다. 그는 “만기 3년 미만 재무부 채권(국채)을 팔아 마련한 4000억 달러(약 468조원)로 6~30년짜리 국채를 사들이겠다”고 밝혔다.



 트위스트는 일석이조(一石二鳥)를 추구한다. 단기 채권 값을 떨어뜨려 외국 자본을 유인하고 장기 채권 값을 올려 기업이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해 투자를 늘리도록 할 수 있어서다. 기업 투자를 유인해 일자리를 창출하는 효과를 기대할 만하다.



 그러나 “시장은 신선한 정책에 쉽게 식상해 하는 법”이다. 세계적인 통화정책 전문가 찰스 굿하트 런던정경대학(LSE) 석좌교수가 평소 즐겨 한 말이다. 한때 새롭던 정책을 다시 쓰면 시장은 시큰둥해 한다는 얘기다. 아니나 다를까. 22일 새벽 버냉키가 트위스트 작전을 발표한 직후 뉴욕 주가는 크게 하락했다. 뒤이어 열린 한국(2.9%), 중국(2.78%), 일본(2.07%), 홍콩(4.85%) 주가도 가파르게 떨어졌다.














 미 자산운용사 노던 트러스트의 이코노미스트인 애셔 뱅걸로는 이날 보고서에서 “버냉키 마법(Magic Bullet)은 없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미 시장은 트위스트 작전을 예상하고 있었다”며 “그 바람에 시장은 버냉키의 대책보다는 경기 진단에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고 말했다. 버냉키는 이날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성명서를 통해 “경기가 둔화할 리스크가 상당하다”고 진단했다. 8월 회의 때까진 “경기가 둔화할 리스크가 있다”고 진단했던 그다.











 트위스트 작전은 식상한 대책일 뿐 아니라 효과도 의문이다. 손성원 미 캘리포니아대 석좌교수는 “미국 기업들이 과잉설비를 갖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금리를 낮춰준다고 해서 설비 투자에 나서려 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주택 경기 역시 낮은 모기지 금리에 기인해 긍정적인 반등을 얻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FRB 내부 분석가도 비슷한 결론을 내렸다.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 이코노미스트인 에릭 스웬슨은 올 3월 분석 보고서를 통해 “장기 국채를 사들여 금리를 낮춰도 기업이 물어야 하는 이자 부담은 크게 낮아지지 않는다”며 “트위스트 작전은 미 정부의 이자 부담을 줄여줄 뿐”이라고 밝혔다.



 게다가 케네디는 침체 끝물에 트위스트 작전을 펼쳤는데도 효과가 제한적이란 평가를 받았다. 버냉키는 경기가 다시 둔화하고 있는 순간에 그 작전을 쓰기로 했다. 트위스트가 경기 하강 가속도를 얼마나 줄일지 의문이다.














 대공황 전문가인 버냉키도 그런 한계를 익히 알고 있다. 그는 학자 시절에 “(트위스트 작전은) 효과가 제한적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런데도 “그가 트위스트 작전을 쓰는 건 정책적 한계 상황 때문이란 게 전문가들의 일반적 시각”이라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재정위기와 경기 불안 사이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정책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궁여지책으로 그런 작전을 선택했다는 얘기다.



 블룸버그 통신은 월가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트위스트 작전이 기업 투자를 원하는 만큼 자극하지 못하더라도 미 정부가 경기 부양 자금을 마련하는 데 들어갈 이자 부담이라도 줄여줄 가능성은 있다”고 보도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어깨를 가볍게 해줄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강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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