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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356> 정부법무공단 아시나요

중앙일보 2011.09.23 00:01 경제 14면 지면보기



국가 위해 일하는 로펌, 친일파 후손 재산 환수 55건 승소했죠





‘국가 로펌’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지요? 각종 국가 관련 소송은 물론 FTA(자유무역협정)와 같은 국가 간 협약에 대한 법률자문, 위헌법률심판 사건까지 오직 대한민국을 위해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문 변호사 집단이 있습니다. 바로 정부법무공단입니다. 오늘은 3년 전 문을 연 정부법무공단의 모든 것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글=김현예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원고 ‘대한민국’, 피고 ‘친일파 후손’









2008년 문을 연 정부법무공단은 각종 국가소송을 대리하고 정부부처·지방자치단체들을 대상으로 법률자문을 제공하는 국내 유일의 국가 로펌이다. 현재 36명의 변호사와 미국 변호사 1명이 근무하고 있다. 김필규 정부법무공단 이사장(맨 앞줄 왼쪽에서 셋째)과 소속 변호사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변선구 기자]





2009년 1월 김영두 정부법무공단 변호사가 서울중앙지법에 소장을 접수했다.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 중추원 부의장을 지낸 민병석의 증손자 민모(73)씨를 상대로 “4억4000여만원의 토지 매각 대금을 국가에 반환하라”는 게 소장의 내용이었다. 친일파 후손이 이미 팔아버린 재산까지 추적해 국고로 환수하기 위해 2년 넘게 공을 들인 끝에 지난 6월 승소 확정 판결을 받아냈다. 그는 “광복 66년이 지난 지금이라도 역사의 정의를 바로잡는 일에 기여할 수 있게 된 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정부법무공단이 맡고 있는 친일재산 환수 사건은 총 104건. 지금껏 마무리된 소송 60건 중 55건이 정부의 승소로 귀결됐다.



국가 편에서 전문적으로 소송을 담당하는 정부법무공단이 세워진 것은 2008년 2월의 일이다. 정부가 서민들에게 무료로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도록 만든 법률구조공단과 공익적인 성격은 같지만 업무 범위가 국가 관련 사건으로 한정돼 있는 것이 공단의 특징이다. 일반인과 정부 부처, 지방자치단체 등의 의뢰를 받아 송사 등을 수행하는 민간 로펌과도 구별된다.



국가 상대 소송 늘어나 2008년 설립



정부가 공단을 세우기로 한 데는 국가를 상대로 한 각종 소송의 증가가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기존엔 기업이나 개인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이나 행정소송을 내게 되면 법무부가 관련 업무를 담당해왔다. 하지만 국민들의 법 의식이 높아지고 정부 정책을 둘러싼 법적 분쟁이 늘자 법무부는 태스크포스(TF)를 꾸려 공단 설립에 나섰다. 정부 정책 등의 위헌 여부를 다투는 헌법 재판이 급증한 것도 한몫했다. 실제로 1996년 7095건에 불과했던 국가 소송은 지난해 9929건으로 증가했다. 소송 금액도 1조2450억원에서 3조9895억원으로 3배 가까이 뛰었다. 미국에서도 늘어나는 정부 소송과 법률 분쟁에 대비하기 위해 연방 법무부 송무국 산하에 775명의 변호사를 별도로 두고 있다.



설립 과정에서 법무부가 벤치마킹한 대상은 호주의 AGS(Australian Government Solicitor)였다. 세계 최초의 국가 로펌인 AGS는 1903년 정부 출자로 세워진 뒤 100여 년간 위헌 사건과 국가 관련 소송을 맡고 있다. 설립 초기엔 국가 송무를 독점했지만 1999년부터 민간 로펌과 경쟁을 통해 국가 소송을 따내고 있다. 소속 변호사는 384명으로 캔버라 등 8개 도시에 지역 사무소를 두고 있다. 법무부는 AGS가 출자자인 정부에 배당금을 지급할 정도로 자립에 성공한 점에 주목했다. 당시 법무부에서 공단 설립 업무를 담당했던 박시준 정부법무공단 변호사는 “정부로부터 소송을 수임한 뒤 소송대리·법률자문 대가로 수임료를 받아 공단을 운영한다는 개념을 AGS에서 빌려왔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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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엔 잡상인 오해받고 쫓겨나기도



공단 설립 당시 국가가 투자한 비용은 65억2000만원이었다. 이 출자금을 바탕으로 2008년 2월 별도 사무실을 내고 변호사 37명 등 전체 직원 72명으로 본격 업무에 들어갔다. 하지만 정작 사건을 맡기겠다고 나서는 부처가 없었다. 보다 못한 소속 변호사들이 직접 공단 소개자료를 들고 전국 지방자치단체와 각 부처를 돌며 홍보에 나섰다. 잡상인으로 오해를 받고 쫓겨나는 일도 있었다.



인지도가 낮고 수임료가 적다 보니 변호사 월급을 줄 수 없는 형편에 놓이기도 했다. 2009년 적자가 8억9000만원에 달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변호사 9명이 공단을 빠져나가면서 위기가 찾아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 민간 대형 로펌보다 비용이 덜 든다는 공단의 장점이 부각됐기 때문이다. 출범 첫해 377건에 불과했던 수임 사건이 지난해 말엔 1090건으로 늘었다. 지난해엔 국가보조금 10억원이 지원됨에 따라 적자폭도 1억9300만원으로 줄었다.



‘국민 세금 지킴이’ 자부심



공단 소속 변호사들이 꼽는 가장 큰 오해는 ‘국민과 싸우는 로펌’이라는 것이다. 국가 소송을 맡다 보니 일반 국민이 낸 국가 상대 소송을 방어하는 역할을 주로 하기 때문에 받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김필규 정부법무공단 이사장은 “소송 당사자가 일반 국민이기 때문에 그런 오해를 받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공단의 기본 목표는 더 많은 국민의 혈세를 절약하고 불필요한 국가 예산의 낭비를 줄이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김 이사장은 그동안 공단이 수행한 사건 중에서 금지금(金地金·순도 99.5% 이상 금괴) 사건을 대표적인 케이스로 소개했다. 상인들이 금지금을 거래하면서 편법으로 부가가치세를 환급받아오다 국세청에 적발된 것이 발단이었다. 국세청이 거액의 세금을 부과하자 소송전으로 비화됐다. 국세청을 대리해 소송을 맡았던 정부법무공단은 대법원에서 부가가치세 환급은 부당하다는 확정 판결을 이끌어냈다. 이 판결로 국세청은 약 2조원에 달하는 재정 지출을 막을 수 있었다. 또 제일은행을 매각해 1조원에 달하는 차익을 얻었던 미국계 사모펀드인 뉴브리지캐피털이 국세청을 상대로 낸 430억원의 법인세 취소 소송에서도 정부 측을 대리해 승소했다.



공단이 맡은 일은 소송만이 아니다. 일반 로펌보다 저렴하게 법률자문을 해주면서 국가 예산 낭비를 막는다. 지방자치단체가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작성하거나 각종 법률안을 검토할 때도 컨설팅을 해 준다. 공단의 평균 자문료는 건당 20만~30만원 선. 법률자문 건수도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해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공공기관에서 의뢰한 법률자문은 약 2075건으로 2008년 출범 당시(633건)보다 3배나 늘었다.



입사 경쟁률 21.4대 1 … 역량 강화가 과제



정부법무공단은 최근 부장검사, 판사 출신의 팀장급 변호사 3명과 공익법무관 출신 변호사, 미국 변호사 등 신규 변호사 9명을 채용했다. 평균 경쟁률은 21.4대 1이었다. 월급을 못 줘 9명의 변호사를 떠나 보내야 했던 2년여 전과는 달라진 모습이다. 급여 수준이 민간 로펌보다 낮은 편인데도 이처럼 입사 경쟁이 치열한 것은 ‘국가 로펌’이라는 공익성 때문이라는 게 공단 측 설명이다. 김형성 정부법무공단 변호사실장은 “공익 소송을 담당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찾아오는 변호사들이 늘고 있다”며 “우수 인력들을 확보하기 위해 경력 변호사를 대상으로 한 판검사 채용 때 공단 근무 경력에 가점을 주는 방안 등을 법무부 등에 건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헤쳐나가야 할 과제도 많다. 지난해 기준 공단의 승소율은 78%대. 하지만 여전히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들의 공단 이용률은 낮은 편이다. 공단에 일을 맡기기보다는 돈을 더 주고서라도 민간 로펌에 맡겨 소송에서 이겨야 한다는 인식이 아직 많은 것이다. 실제로 금융감독위원회는 황영기 전 KB금융지주 회장이 제기한 징계 취소 소송에서 패소하자 사건 대리인을 공단에서 민간 로펌으로 교체하기도 했다. 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제기된 국가·행정 소송 4만5683건 가운데 공단이 따낸 업무는 2.3%에 불과했다.



공단 측은 변호사 정원을 40명으로 제한하고 있는 정부법무공단법 개정도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국내 최대 로펌인 김&장이 380명의 변호사를 보유하고 있고 태평양과 광장이 각각 230여 명가량의 변호사를 두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외국과 비교해도 규모가 작다. 국가 로펌 형태는 아니지만 일본은 법무성 산하(검사 20명, 송무관 50명)와 각 지방법무국(검사 60명, 송무관 380명)에 모두 410명에 달하는 국가 송무 인력을 확보하고 있다. 공단 측은 “스페인은 국가변호사제도를 둬 480명의 국가변호사를 고용하고 있다”며 “공단의 공익성을 고려할 때 국가 송무 인력을 늘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필규 이사장은 “현재 미국 변호사가 1명에 불과하다”며 “공단의 국제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당면 과제”라고 말했다. 지난 7월 1일 국내 법률시장이 개방되면서 해외 로펌들이 대거 국내 시장 진출을 준비하는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이사장은 “향후 5년 내에 영·미계 로펌들이 국내 시장에 대거 진출할 것”이라며 “이들은 외국계 기업을 대리해 우리 정부를 상대로 각종 법률 분쟁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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