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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품 그 이상의 특품, ‘바람꽃

중앙일보 2011.09.22 04:43 주말섹션 4면 지면보기



[이영미의 ‘위대한 식재료’] ‘1%의 소금’ 토판염



소금을 밀어낸 뒤 염전 바닥이 드러났다. 까만 개펄 흙이 섞이지 않게 소금을 밀어내는 작업엔 ‘장인’의 집중력이 필요했다.







좋은 소금을 만나러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제철의 좋은 식재료를, 생산 현지로 찾아가 눈으로 확인하며 이야기를 해보고자 이 시리즈를 기획하면서 첫 회의 이야깃거리로 망설임 없이 선택한 것이 바로 소금이었다. ‘리어왕’의 착하고 정직한 막내딸은 최고 권력자 아버지의 존귀함을 소금에 비유하여 노여움을 샀다. 소금이란 게 이렇다. 귀한 취급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따져보면 가장 귀한 먹을거리가 아니던가.



 소금이 별거냐, 그냥 짜면 그만이지. 이렇게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엉성한 자루에 담겨 됫박으로 팔리던 굵은소금 천일염은 깨끗지 않아 보여 김치 절일 때나 썼고, 음식에 직접 넣는 것은 천일염을 물에 녹여 다시 만든 고운소금(‘꽃소금’)을 썼다. 그러다 설탕처럼 곱고 아주 짠 정제염이 나와 한동안 인기를 모았다. 값싸면서 위생적이기만 하면 되던 시절, 굵은 천일염은 이런 하얀 소금들에 밀려났더랬다.



 하지만 바로 이 시절부터 우리 식탁에서 화학조미료 사용이 급증했다. 정제염은 그저 짜기만 할 뿐 다른 맛을 내지 못했기 때문에, 감칠맛은 화학조미료와 복합조미료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때마침 집에서 담그는 조선간장이 점차 사라지면서 이 현상은 더 심각해졌고, 음식은 점점 인위적으로 들척지근해졌다.



 화학조미료를 되도록 쓰지 않으려 하는 나로서는 꽤 고민일 수밖에 없었다. 고깃국이나 웬만한 나물은 조선간장을 쓰면 된다고 치자. 하지만 콩나물국·달걀찜·들깨국처럼 간장이 아닌 소금 간의 맛으로 먹어야 하는 음식들은 문제였다. 국물이 노르스름해질 때까지 폭 끓인 콩나물국은 맛있는 소금 한 숟가락을 냄비에 풀어 넣는 것으로 완성된다. 맛있는 소금은 진한 콩나물 국물의 향취를 해치지 않으면서 시원하고 깨끗한 국을 만들어준다. 또한 숙주나물이나 무나물처럼 하얗고 깨끗한 나물에 소금 간을 고집하는 입맛이라면, 역시 좋은 소금은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식품이다.



 





① 염전 물 위에 떠오른 소금 결정. 이것을 체로 떠내면 최고급 ‘바람꽃 소금’이 된다.
② 토판염을 고집하는 신안머드쏠트영농조합법인 박성춘 대표가 소금을 거둬들이고 있다.




우리 식탁에서 천일염이 다시 각광받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화학조미료에 대한 경계가 커지고, 값싼 수입 소금으로 김장을 망쳤느니, 젓갈 맛이 예전 같지 않다느니 하는 소리가 잦아지면서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우리 천일염의 맛에 대해 다시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좋은 국산 천일염을 사다가 일 년 이상 체에 받쳐놓아 간수를 빼고 쓰는 극성스러운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래, 소금이야말로 기본 중의 기본이다. 시리즈의 첫 시작은 소금이다!’ 이렇게 호기 있게 결정을 해놓고 내심 얼마나 흐뭇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것이 얼마나 무모한 결정인지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우선 염전은 매우 먼 곳이었다. 우리가 정한 곳은 목포에서 2시간이나 배를 타고 가야 하는 전남 신안군 신의면. 아침 일찍 서울에서 출발해 ‘하루 종일’ 그저 가야만 했다. 더 큰 장애는 날씨였다. 염전에서 소금을 얻으려면 최소한 사흘 연속 맑은 날씨가 이어져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8월 내내 비가 왔다. 염전에 가봤자 소금 구경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8월 한 달을 하늘만 쳐다보며 날짜를 미루고 미루었다.



 8월 말 겨우 반짝 해가 나기 시작하고서야 가볼 수 있었던 염전은 ‘토판염’으로 유명한 신안머드쏠트영농조합법인이었다. 박성춘(49) 대표는 ‘장판염’이 주도하는 염전들 한복판에서 다시 토판염을 시도한 인물이다. ‘장판염’은 염전 바닥에 까만 장판을 깔고 그 위에서 거둬들이는 소금이다. 1970년대 말 이후 비닐이 흔해지면서 ‘장판염’ 생산 방식이 일반화됐다. 까만 장판은 태양열을 잘 흡수해 소금이 두 배나 빨리 생성됐고, 꺼먼 개펄 흙이 섞이지 않은 깨끗한 천일염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런데 박 대표의 선택은 거꾸로였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99년 염전 일을 시작한 그도 처음엔 남들처럼 ‘장판염’을 만들었다. 하지만 2007년 나폴리 세계소금박람회에서 세계적 명품이라는 프랑스 게랑드 소금의 맛을 본 뒤 생각이 바뀌었다. 우리 토판염이 게랑드 소금보다 염도도 낮고 맛도 더 좋다. 세계 수준이 이 정도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토판염이 고가이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이제 소금의 질을 따지는 시대가 열리고 있으니 승산이 있어 보였다. 토판염엔 개펄 성분이 더해지게 되니 장판염보다 맛과 영양이 뛰어날 게 당연했다. 2009년 염전 바닥에서 장판을 걷어냈다.



 단, 토판의 흙물이 섞여 소금 색이 회색으로 되는 게 문제였다. 도시의 소비자들이 싫어하는 색이다. 박 대표의 선택은 첫 결정이 이루어진 윗부분의 깨끗하게 뽀얀 우윳빛 소금만 판매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생산하려니 품이 보통 드는 게 아니다. 너무 세게 긁으면 염전 바닥 개펄 흙이 따라 올라오기 때문이다. 긁어 밀어놓은 소금을 자루에 담는 일도 고난도 작업이다. 그의 아내와 아들이 하는 삽질은, 마치 딸기 다루듯 조심스럽다.



 이 특품 소금을 긁고 난 후에는 2등품이 생산된다. 2등품은 회색인 것이 흠이지만 생산량이 많아 가격을 좀 낮출 수 있다. 토판염은 우리나라 1300여 곳 염전 중 딱 10곳에서만 생산되는 ‘1%’의 소금인데, 그렇다고 모두 박 대표처럼 특품만 생산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토판염이라 하더라도 가격의 차이가 있다고 한다. 2등품이라고 나쁜 소금은 아니지만 박 대표의 선택은 최고의 명품을 만들어 토판염의 성공 모델을 만드는 길이었다. 그래서 특품만 생산하고 나머지는 그냥 물에 녹여버린다.



 그는 여기에 머물지 않았다. 특품 토판염보다 한 등급 위의 소금에 욕심을 냈다. 소금이 결정되어 하얗게 꽃피는 어느 순간, 토판 염전에서는 소금 결정이 동동 뜨는 현상이 나타난다. 육면체의 소금 양 옆으로 잠자리 날개처럼 결정이 생겨 소금이 일시적으로 물 위에 뜨는 것이다. 그 순간 이것을 체로 떠내면 정말 깨끗한 소금이 나온다. 그는 그것을 ‘하늘이 가끔 내려주시는 선물’이라 했다. 상업화할 물량이 나오지 않아 아직은 그저 지인들에게나 판매하는 수준이란다. 우리는 그날, 염전 물 위에 뜬 날개 달린 소금 ‘바람꽃 소금’을 목격하는 행운을 얻었다.



 하지만 이런 귀한 소금으로 김장배추를 절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 같은 서민을 위해 좋은 천일염 고르는 법을 물어보았다. 눈으로 보아 깨끗하고 뽀얀 소금이 좋단다. 봄·가을 기온이 낮을 때 생산되는 소금은 색이 투명하고 단단하며, 맛은 짜고 쓴 기운이 강하단다. 저가의 중국산 소금에 비하자면 우리 천일염은 장판염일지라도 좋은 소금이란다. 박 대표는 우리나라의 소금 자급률이 너무 낮은 것을 우려했다. 중국 소금 값이 언제까지나 저렴하리란 보장이 없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적정한 값을 매기고 저가의 수입 소금과 섞이지 않을 방도를 마련해 국산 소금의 신뢰를 유지하고, 국내 소금 생산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소금 맛은 참으로 오묘했다. 여러 소금을 놓고 비교하니 확실히 토판염은 짠맛이 빨리 사라지면서 뒤끝이 달착지근했다. 날개 달린 ‘바람꽃 소금’은 맛이 더 깨끗하고 더 달았다. 이 정도면 화학조미료 섞인 맛소금이 필요없겠다 싶다. 그날 저녁 우리는 섬에서 며칠 만에 잡혔다는 민어회를 먹었는데, 참기름 약간 섞은 소금에 회를 찍어 먹어보았다. 부드럽게 숙성된 민어 살에 깔끔하고 감칠맛 나는 소금이 어우러진다. 아, 이 맛 역시 별미다.



그래도 집에 오는 내내 소금 가격 생각에 머리가 복잡했다. 장판염에 비해 토판염이 열 배는 족히 비싸다는데…. 집에 돌아와 토판염만으로 간을 맞춰 계란찜을 했다. 고기나 새우젓이 들어가지 않았는데 은은한 감칠맛이 일품이다. 살짝 마음이 기운다. 아, 이 저주받을 입맛을 어쩌겠나. 외식 한 번 줄이고 맛있는 소금 먹지, 뭐.



글=이영미 대중문화평론가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영미 1961년 서울 신설동 한옥에서 태어난 서울 토박이. 개성 출신 할머니와 전북 출신 어머니의 손에서 나온 음식을 먹으며 ‘절대 미각’이 개발됐다. 고려대 국어국문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대중문화평론가로, 음식에 대한 ‘평론’은 중간중간 취미 생활로 이어가고 있다. 『한국대중가요사』 『흥남부두의 금순이는 어디로 갔을까』 『세시봉, 서태지와 트로트를 부르다』등이 그의 직업 관련 저서. 또 2006년 음식에세이 『참하고 소박한 우리 밥상 이야기』를 펴냈으며, 2010년 3월부터 1년 동안 중앙SUNDAY에 칼럼 ‘제철 밥상 차리기’를 연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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