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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한나라도 놀란 손학규의 선택

중앙일보 2011.09.22 01:40 종합 1면 지면보기



“손가락질당하는 정당정치 살려내자”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21일 국회 본회의에 참석해 양승태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표결에 투표하고 있다. 왼쪽은 한나라당 이한성 의원. [오종택 기자]



한나라당은 21일 오전 9시30분 의원총회를 열어 민주당의 반대로 국회 본회의 표결이 두 번 무산된 양승태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단독 처리하기로 결정했다. 이를 위해 황우여 원내대표 등은 소속 의원들에게 ‘동원령’을 발동해 국회 본회의장엔 140여 명이 대기하고 있었다.



 오전 11시40분쯤 한나라당 의석이 술렁였다. 본회의에 불참할 것으로 예상됐던 민주당 의원들이 한꺼번에 몰려왔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한나라당이 조용환 헌법재판관 후보자 선출안에 찬성해주지 않으면 양 후보자 임명동의안에 협조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민주당이 실력저지에 나선 것으로 보고 긴장하는 표정이었다.



 약 10분 뒤 한나라당 의석이 또 한번 웅성거렸다.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단상에 올라 박희태 국회의장 앞에 있는 의사진행발언대에 섰기 때문이다. 손 대표는 “‘누구누구현상’(안철수 현상)이라는 말이 국민에게 회자된다. 정치의 실종은 재앙이다. 우리가 정당정치를 회복해야 하겠다”면서 다음과 같이 의사진행 발언을 이어나갔다.



“민주당이 대법원장 임명동의안을 헌법재판관 선출안에 연계시키는 것에 불만을 가진 걸 안다. 조용환 헌법재판관의 발언(‘북한이 저질렀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지만 직접 보지 않아 확신이란 표현은 적절치 않다’)이 마음이 안 드시는 분도 있으신 것 잘 안다. 그러나 야당 추천 몫인 헌법재판관은 정당정치의 골간이다. 헌법재판소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사회적인 소수의견에 대한 존중이 반영돼 있다. 소수야당으로서 얼마나 힘이 없었으면 대법원장 임명동의안과 연계시켜서라도 막아보려고 했겠나. 우리는 사법부 수장이 축복 속에 임명받기를 바라지 여당에 의해 단독 처리되는 걸 바라지 않는다.”



 그러면서 손 대표는 “솔로몬 왕 앞에서 남에게 친자식을 내주면서 친자식을 살리려고 했던 어머니의 마음이 되고자 한다”며 “오늘 대법원장이 국회에서 축복 속에 임명되는 것을 바라는 마음에서 이 자리에 참석한 것을 혜량해 주시고, (조용환) 헌법재판관 선출안을 조속한 시일 내에 처리해 달라. 국민에게 손가락질 당하고 외면받는 정당정치를 살려내자”고 ‘간청’했다.



 이어 그는 “우리 민주당 의원님들께도 간절히 호소한다. 억울함이 많으실 거다. 제가 이렇게 나온 데 대한 불만도 많으실 거다. 그러나 우리가 정치를 책임진다는 자세로 삼권분립의 한 축인 사법부의 수장을 축복 속에 임명할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고 했다.



 발언을 마친 손 대표는 한발 물러서 한나라당 의석을 향해 고개를 숙인 뒤 단상을 내려갔다. 곧이어 벌어진 표결에서 양 후보자 임명동의안은 재석 245명 중 찬성 227명, 반대 17명, 기권 1명으로 가결됐다. 민주당까지 찬성표를 더한 결과다.



 앞서 민주당은 오전 9시30분부터 의원총회를 열었다. 회의에선 강·온파가 각각 8명씩 나와 발언하면서 두 시간 가까이 갑론을박(甲論乙駁)을 벌였다. 정세균·조배숙 최고위원 등은 “대법원장 임명동의안을 통과시켜 줘도 조용환 후보자 선출안이 통과된다는 보장이 없다”고 본회의 보이콧을 주장했다. 그러나 우윤근·장세환 의원 등은 “대법원장 임명동의안을 막으면 조용환 후보자는 무조건 통과되기 어렵다”고 맞섰다.



 16명의 발언을 듣고 난 뒤 손 대표가 “(각각의 입장을) 다 알겠다. 오늘은 나의 뜻을 따라 달라”고 나섰다. 그의 결론은 “들어가서 조건 없이 동의해주자. 내가 책임지겠다”는 것이었다. 지루한 논쟁 끝에 손 대표가 내린 결론에 소속 의원들은 박수를 쳤다.



 손 대표 측근은 “대표가 한나라당에 읍소(泣訴)를 해서라도 정당정치를 복원해내는 게 ‘안철수 바람’으로 드러난 민심에 부응하는 길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고 전했다.



 손 대표의 전격적인 ‘양보정치’로 한나라당은 대법원장 인준이라는 난제를 한가지 풀기는 했다. 하지만 새로운 정치적 부담을 안게 됐다.



 일단 조 후보자 선출안을 처리할 수 있는 다음 번 국회 본회의는 10월 10일로 예정돼 있다. 그동안 반대 입장을 밝혀온 조 후보자에 대한 당론을 이때까지 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황 원내대표는 “대법원장 동의안 처리에 뜻을 같이해준 민주당에 경의를 표한다”면서도 “조 후보자 선출안은 조금 냉각기를 갖고 당내 여론을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기류는 조금 복잡해지는 분위기다. 양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처리된 뒤 조 후보자 선출안에 반대해온 한나라당 박준선 의원은 “손 대표의 본회의 연설로 당 기류가 바뀌고 있다. 연설 중 고개를 끄덕이는 여당 의원이 많았고, 나도 생각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조 후보자 선출안이 통과되면 한나라당은 문을 닫아야 한다”(박영아 의원)는 반대 의견도 여전하다. 이명규 원내수석부대표도 “조 후보자가 자신의 발언에 대해 오해를 푸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야당 대표가 직접 나서서 의사진행발언을 하면서 ‘정당정치의 복원’을 명분으로 대법원장 임명동의안을 처리했는데, 야당의 요구를 마냥 반대하기도 어려워진 상황이다.



글=박신홍·백일현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사진 이름 소속기관 생년
손학규
(孫鶴圭)
[現] 민주당 국회의원(제18대)
[現] 민주당 대표최고위원
194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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