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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취직 간 딸 불법 다단계 빠져 … 제발 찾아달라”

중앙일보 2011.09.22 01:30 종합 3면 지면보기



[탐사 기획] 거마 대학생 5000명 슬픈 동거
‘불법 다단계의 늪’ 보도 뒤 하루 100통 제보 쏟아져



서울 송파경찰서 다단계 특별수사팀 수사관들이 지난달 말 석촌동의 한 불법 다단계 업체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이 업체는 관련 서류를 미리 빼돌려 수사에 대비한 것으로 드러났다. [변선구 기자]











지난 6월 불법다단계 피해를 본 여대생의 가족이 서울 송파경찰서 황운하 서장에게 보낸 편지. 피해 여대생이 800만원의 대출 빚을 졌고, 항상 감시받는 합숙소 생활을 하다 경찰의 도움을 받아 겨우 빠져 나왔다는 사연이 구구절절 적혀 있다.



“우리 딸 좀 찾아주세요.”



 20일 오전 취재팀에 전화가 걸려왔다. 대구에 사는 김모(50·여)씨는 “중앙일보에서 불법다단계에 빠진 거마(서울 송파 거여·마천지구)대학생 기사를 보고 전화했다”고 했다. 김씨는 “서울에 취직한다고 간 지가 오래 됐는데 설에도, 이번 추석에도 내려오지 않고 연락도 잘 안 된다”며 울먹였다. 김씨의 딸 소영(23·가명)씨는 대구의 한 전문대를 졸업한 후 6개월간 취업을 못해 집안 일을 돕고 있었다. 지난해 8월 중순 소영씨는 평소 연락이 없던 중학교 친구의 전화를 받은 며칠 후 “일자리가 생겨 서울에 간다”고 했다. 서울 강남에 있는 이벤트 회사 기획파트에서 사람을 뽑는다는 것이었다. 서울로 떠난 지 5일 후 소영씨는 “취직됐으니 걱정 말라”며 “신입사원 교육 때문에 당분간 전화하기 어렵다”고 연락해 왔다. 한동안 연락이 없던 소영씨는 지난해 11월 말 “같이 살던 친구방에서 나와 월세를 얻어야 하니 보증금 300만원을 보내 달라”고 했다. 김씨가 “이사할 집을 같이 구해보자”고 했지만 소영씨는 “알아서 할 테니 돈만 보내 달라”고 재촉해 할 수 없이 돈을 보냈다. 문제는 4월에 터졌다. A저축은행에서 채무확인서가 김씨 집으로 날아왔다. 딸이 지난해 9월 초 800만원을 대출받았고 이자 납입이 4개월째 연체됐다는 것이다. 김씨는 "돈이 없어 한 번에 못 갚고 이자만 내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딸이 불법 다단계 회사에서 일하는 사실을 김씨가 알게 된 것은 한 달 전쯤.



 "소영이 대학친구가 집에 찾아왔다. 소영이가 취직 자리를 소개하겠다고 연락해 서울에 가서 만났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소영이가 하는 일이 불법 다단계라는 사실에 깜짝 놀라 헤어졌다고 하더라.”









서울 송파구 마천동의 불법다단계 합숙소에서 대학생 15명(사진 왼쪽)이 공동 생활을 하고 있다. 압수수색에 나선 송파경찰서 수사팀이 옆방에서 장부 등을 보고 있다. [변선구 기자]









  취재팀과 서울 송파경찰서 수사팀에는 김씨와 비슷한 사연을 털어놓는 전화가 20일 하루에만 100여 통이나 걸려왔다. 피해자 중에는 지방대생뿐 아니라 서울 소재 대학생도 있었다.



  “서울 OO대에 다니다 제대 후 복학을 앞둔 아들이 700만원 대출받아 다 날렸다. 밥도 제대로 못 먹어 폐결핵에 걸려 치료 중이다.”(서울에 사는 55세 이모씨)



 불법 다단계에서 일하던 딸을 석 달 만에 빼내온 한 어머니의 사연은 그들의 생활이 얼마나 비참한지 잘 보여준다. "서울 송파구 마천동에서 합숙소 생활이 시작되기 직전 휴대전화를 다 압수했다. 심지어 화장실에서 일을 볼 때도 문을 열어놓게 하는 등 24시간 감시가 붙었다. 반찬은 김치와 계란 1~2개를 푼 희멀건 달걀죽을 15명이 둘러 앉아 먹었다. 일요일에는 교회에서 공짜로 주는 밥으로 점심을 때웠다.”



 피해자들의 생활상을 지켜본 이들의 제보도 이어졌다. 서울 강남역 헌혈차 근무자는 “불법 다단계 일을 하는 대학생들이 몇 천원짜리 상품권 받으려 주말마다 헌혈하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전했다. 생활비를 메우려 헌혈을 한다는 얘기다.



 한 기업체는 송파경찰서에 전화를 걸어 “피해 대학생 중 희망자를 대상으로 취업설명회를 하고 싶다”며 “청년들이 불법 다단계에서 벗어나 정상생활을 찾는 데 도움을 주고 싶다”고 전해왔다.





◆탐사기획부문 = 이승녕·고성표·박민제·이서준 기자, 이정화 정보검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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