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스페셜 리포트] 복지에서 일자리로 … ‘예산 키워드’ 바뀐다

중앙일보 2011.09.22 00:15 경제 6면 지면보기



내년 예산안 특징은



20일 경기도 수원 경기대 야외광장에서 열린 ‘2011 경기 잡페어 in KGU 채용박람회’에서 한 구직자가 일자리를 찾고 있다. 청년층 취업 경쟁력과 기업 일자리 지원을 위한 이번 채용박람회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등 총 62개사(온라인 21개사 포함)가 참여했다. [뉴시스]













1978년 청와대 대회의실.



 예산안 국회 제출을 앞두고 박정희 대통령을 비롯해 모든 장관과 공화당 간부 전원이 참석한 연석회의가 열렸다. 당시 예산국장이었던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이 브리핑했다. 회의 막바지에 법무부 장관이 갑자기 대통령에게 교도관 수당 인상을 건의했다. 예상치 못한 답변을 해야 할 부총리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급히 다가가던 강 국장을 대통령이 제지했다. “강 국장, 가지 말고 거기서 바로 얘기해.”



 강 국장은 그 자리에 서서 “안 됩니다”고 답했다. 회의장은 일시에 웃음바다가 됐 다.



 강 전 장관은 『국가가 해야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에서 “대통령이 직접 답변하라고 한 건 아마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나 최소한 ‘검토해 보겠습니다’는 답을 기대했을 것”이라며 “회의가 끝난 뒤 ‘용감한 사나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예산 분야에서 많이 일한 그에겐 ‘NO맨’ 습성이 고질처럼 따라다닌다. 그는 “지금도 누가 말을 하면 ‘아니야’라는 말부터 한다고 핀잔을 자주 듣는다”고 했다.



 모자란 재원을 쪼개 써야 하는 예산 당국의 고민은 요즘도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천생 ‘NO맨’일 수밖에 없는 예산 당국은 그래도 재원을 배분하면서 예산의 ‘색깔’을 내려고 고민한다. 올해 예산은 ‘서민희망·미래대비’에 방점이 찍혔다.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재정을 쏟아부었던 2009년에는 ‘일자리 창출을 위한 경제 재도약 예산’이란 이름과 ‘수퍼 추경’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위기에서 성공적으로 벗어난 뒤인 2010년은 ‘민생안정·미래도약을 위한 예산’이었다.



 그렇다면 내년 예산은 어떤 이름이 붙을까. 다음 주 발표되는 정부 예산안의 윤곽이 드러나면서 ‘색깔’도 뚜렷해지고 있다. 김동연 기획재정부 예산실장은 “내년 예산은 일자리 예산”이라고 했다. 복지와 경제 성장의 핵심 연결고리인 일자리를 중심으로 ‘성장-일자리-복지’의 선순환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서민에게 ‘일하는 복지’ ‘맞춤형 복지’를 제공해 노동력 공급을 늘리고 노동의 질을 높이면 생산활동이 늘어나 결과적으로 성장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정부가 ‘일자리 예산’을 내년 정부 씀씀이의 기본 축으로 삼은 건 정치권의 과도한 복지 포퓰리즘에 맞대응하려는 목적도 있다. 여야의 복지 요구에 예산 당국이 ‘복지’로만 답하다 보면 끝없이 끌려가는 형국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참에 아예 ‘복지’에서 ‘일자리’로 소모적 논의의 장(場)을 옮겨 보자는 정책 노림수도 담았다.



 정부는 ‘일자리 예산’이라는 지붕을 떠받치기 위해 몇 개의 중요한 기둥을 세웠다. 저임금 근로자 사회보험료 지원과 ▶청년 창업·창직(創職) ▶고졸자 취업 지원 ▶문화·관광·글로벌 일자리 ▶사회서비스 일자리 등이 그런 기둥들이다. 이 내용들은 대부분 추석을 앞두고 당정협의를 거쳐 이달 초 한나라당이 순차적으로 발표했다.



 우선 영세사업장의 저임금 근로자에 대한 사회보험료 지원은 ‘일하는 복지’를 상징하는 제도 변화다. 저임금 근로자 120만 명에게 정부와 근로자, 사용자가 3분의 1씩 4대 사회보험료를 분담하는 형태다. 정부는 ‘보험료는 본인 부담’이라는 사회보험의 기본 원칙까지 뛰어넘으면서 사회보험의 사각지대를 없애기로 했다. 정부가 4대 보험료 일부를 지원하는 첫 사례다. 여기에 연간 2300억원이 들어간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부양의무자 소득 기준을 완화하는 사회안전망 확충도 눈에 띈다. 추가로 2200억원을 들여 비수급 빈곤층 6만1000명을 기초수급자로 보호하기로 했다.



 청년 창업·창직 지원방안에선 정부 지원을 수요자 중심으로 바꿨다. 아이디어 창업 등 창업 초기 단계에서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민간 금융회사와 매칭 방식으로 800억원을 투입하고 정부의 직접투자도 확대한다.



 김동연 예산실장은 “그동안 복지 논쟁을 통해 복지 부문이 크게 두드러지면서 경제 활력 제고 측면이 간과된 점이 있다”며 “일자리 창출과 복지뿐 아니라 경제 활력과 미래 대비에도 재정 측면에서 상당히 신경 썼다”고 말했다.



서경호 기자





◆예산 처리 절차=행정부 각 부처가 6월 말까지 예산요구서를 기획재정부에 제출하면 정부의 예산 편성작업이 본격화된다. 재정부의 예산 심의를 거쳐 9월 말 정부안이 확정된다. 정부는 국무회의 의결과 대통령 승인을 거쳐 회계연도 개시 90일 전인 10월 2일까지 국회에 예산안을 제출한다. 국회는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예산안을 심의·의결해야 하지만 매년 법정 기한을 지키지 않고 있다.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