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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리뷰] ‘쿠킹 위드 엘비스’

중앙일보 2011.09.22 00:12 종합 25면 지면보기



엘비스 노래 들으며 ‘막장가족’ 훔쳐보기



엘비스 프레슬리 모방가수이자 식물인간이 된 아빠 역은 연극배우 서현철(가운데)씨가 연기한다.



연극 제목은 ‘쿠킹 위드 엘비스’(Cooking with Elvis). ‘엘비스와 함께 요리를∼’ 정도 되겠다. ‘로큰롤의 제왕’ 엘비스 프레슬리가 아기자기하게 음식 만드는 얘기를 다룬 연극? 오산이다. 진짜 엘비스는 얼씬도 안 한다. 짝퉁만 나온다. 정작 그는 식물인간이라 꿈쩍도 안 하고, 가족들끼리 머리끄덩이 잡고 싸우기 바쁘다. 먹고 마시고 섹스하고 배신한다. 아슬아슬한 ‘19금’ 연극이다.



 콩가루 가족 얘기다. 아빠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이미테이션(짝퉁) 가수였다. 2년 전 교통사고로 전신마비가 됐다. 아내는 흔들거린다. 알코올 중독이다. 술집에서 스친 10살 어린 남자를 집안으로 끌어들인다. 몸을 못 쓰는 남편 옆에서 보란 듯 어린 남성과 섹스를 한다. 열여섯 딸도 있다. 그는 아빠를 간호하며 엄마를 증오한다. 온갖 스트레스를 초콜릿·케이크 등으로 해결한다. 집에만 갇혀 집착하듯 먹어 치운다.



 딸에게 엄마의 남친은 낯설면서도 호기심 어린 대상이다. 그에게 순간 빠져 잠자리까지 갖는다. 엄마와 딸 사이에서 오가던 남자는 혼란스럽다. 하소연 할 곳도 없는 그는 식물인간 아빠에게 찾아가 넋두리한다. 그러다 발기한 아빠의 성기를 보곤 자위를 해준다. 어떤가. 이 정도면 막장 드라마의 종결자 아닐까.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로 유명한 영국 극작가 리 홀이 썼다. 엘비스 프레슬리라는 대중문화 아이콘을 등장시키고는 현대인의 욕망과 갈증을 거침없이 발가벗긴다. 우회로는 조금도 용납할 수 없다는 듯 딸과 엄마가 서로에게 비수를 꽂는 대사는 적나라하지만 묵직하다.



 정작 묘미는 노래다. 전신마비 아빠는 가끔씩 환상처럼 등장해 엘비스 프레슬리의 히트곡을 부른다. 그 노래가 상황과 딱딱 맞는다. 엄마와 젊은 남친이 부엌 식탁 밑에서 몰래 정사를 할 때엔 ‘Suspicious Minds’(수상한 마음)가 울려 퍼지고 딸이 첫 경험을 할 때엔 ‘Wonder of You’(당신의 놀라움) 등을 노래하는 식이다. 이 정도 절묘함이면 꽤 지적인 주크 박스 뮤지컬이라 불러도 손색 없을 듯싶다. 닉슨 대통령을 만난 일화 등 생전 엘비스 프레슬리의 에피소드를 극에 녹여낸 점도 잔재미다.



 장면 전환은 아직 덜컹거린다. 흐름이 툭툭 끊긴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광적인 팬이 아니라면 대사의 함의를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도 아쉽다.



 최민우 기자





 ▶연극 ‘쿠킹 위드 엘비스’=10월 30일까지 서울 대학로 한양레퍼토리씨어터. 3만5000원, 4만원. 1588-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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