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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뺨치는 법정스릴러 … 진실 하나 놓고 세 남자가 붙었다

중앙일보 2011.09.22 00:10 종합 25면 지면보기



[영화 리뷰] ‘의뢰인’



‘의뢰인’은 충무로에서 거의 볼 수 없었던 법정스릴러다. 변호사 역 하정우(사진), 검사 역 박희순, 유력용의자 역 장혁 세 배우의 연기가 흥미로운 이야기안에서 격돌한다. 특히 하정우와 박희순은 수 쪽에 달하는 최후변론 등 딱딱하고 긴 대사를 인상적으로 소화했다.





법정스릴러는 더 이상 할리우드의 독점 품목이 아니다. 손영성 감독의 ‘의뢰인’이 좋은 증거다. 검찰 측과 변호인 측의 팽팽한 법정 공방, 이어지는 ‘범죄의 재구성’이 좀처럼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특히 군살 없는 연출에서 오는 속도감은 위력적이다. 미드(미국드라마)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특히 흥미롭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주인공은 “범인이 확실한데 물증이 없어 못 잡는 건 말이 안 된다”는 검사 민호(박희순)와, “난 웬만하면 (의뢰인은) 다 믿는다”는 변호사 성희(하정우). 두 연수원 동기가 맞붙는다.



 이런 할리우드식 법정드라마가 가능한 건 2008년 도입된 국민참여재판 때문이다. 배심원제의 특성상 변호사와 검사는 ‘관객’인 배심원 앞에서 ‘연기’로 설득해야 한다. 법정이 연극 무대인 셈이다.



 여기에 매력적인 조연인 용의자가 보태져 팽팽한 삼각관계를 형성한다. 하필 결혼기념일에 아내(유다인)를 죽인 혐의로 체포된 민철(장혁)이다. 사진 현상을 하는 직업 탓에 열 손가락 지문이 없다. 검찰은 그래서 사건 현장에 일절 흔적이 남지 않았다고 추정한다. 민철은 1년 전 일어난 부녀자살해사건의 유력 용의자이기도 하다. 게다가 민철의 아내 시체는 발견되지도 않았다.



 ‘의뢰인’을 떠받치는 네 개의 수레바퀴는 상호모순적이다. 사건은 현장의 혈액량으로 봐선 사망이 확실하지만 시체는 없다. 용의자는 유력하지만 물증은 없다. 검찰은 정황증거밖에 없는데도 혐의를 확신한다. 변호인은 의뢰인에 일말의 의심을 품으면서도 어쨌건 이기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이 수레바퀴가 굴러가면서 배심원은 민철을 둘러싼 ‘합리적 의심(resonable doubt)’을 서서히 거둔다. 동시에 관객은 과연 진실이 무엇인가에 대한 의혹을 품게 된다.



 반전이 기다리고 있는 뒷부분은 이런 배심원의 심경 변화와 관객의 증폭된 의혹이 충돌하며 스파크를 일으키는 지점이다. ‘정의’를 키워드로 한 결말은 할리우드식 전개에 비해선 다분히 한국적이라는 인상이다.



 역할 배분이 잘 이뤄진 세 배우의 앙상블은 ‘의뢰인’을 놓치지 말아야 할 첫째 이유다. 하정우·박희순·장혁의 삼투작용은 이 영화의 논리구성상 빈 부분을 상당 부분 가려준다. 특히 하정우는 ‘멋진 하루’ ‘비스티 보이즈’ 등에서 보여줬던, 넉살 좋고 다소 느물거리는 특유의 매력을 한껏 살렸다. 법률브로커(성동일)와 사무장(김성령)과의 툭툭 치고 받는 연기는 영화의 완급 조절장치가 돼준다. “무고한 한 사람을 범인으로 만드는 것보다 죄 있는 열 사람을 풀어주는 게 낫다”며 “이제부터 셋을 세면 출입문으로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들어올 거다”라고 말하는 최후 변론에선 관객도 절로 호흡을 조절하게 된다.



 연출자 손 감독은 홍상수 감독의 ‘극장전’ 조연출 출신. ‘약탈자들’(2008)로 인상적인 데뷔식을 치렀던 그의 두 번째 영화다. 29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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