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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생태계 설계자’가 된 인간, 그 우월적 지위 계속갈까

중앙일보 2011.09.17 00:29 종합 21면 지면보기








진화의 종말

폴 에얼릭·앤 에얼릭 지음

하윤숙 옮김, 부키

560쪽, 2만3000원




인간이 자칭 ‘만물의 영장’ 노릇을 시작한 건, 기실 얼마 안 됐다. 약 5만 년 전, 도구 제작 기술이 급격히 발전하고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부터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UCLA) 교수이자 유명 과학 저술가인 제레드 다이아몬드가 ‘대약진’이라고 명명한 혁명적 변화였다.



 하지만 오늘날 인간은 지표의 12%에 농사를 짓고 25%에 가축을 기른다. 2%에 도로·건물을 세웠고, 30%의 숲·산림지대 역시 이런저런 용도로 쓰고 있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지구 상의 땅은 이제 높은 산과 깊은 사막, 빙하 아래 정도뿐이다. 불과 5만 년 만에 인간은 65억 년 나이의 지구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게 된 것이다.



 저자들이 인간을 ‘지배하는 동물’(원제 The Dominant Animal)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런 맥락이다. 그들은 인간이 ‘지배자’가 된 비결로 유전적·문화적 진화를 꼽는다. 성공적으로 다른 종(種)들과 공진화(共進化)를 한 덕에, 이제 주변 환경을 자신들의 생존에 유리하게 바꾸는 ‘생태계 설계자’의 지위에 올랐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인간의 지배가 계속 가능하겠느냐는 것이다. 불행히도 ‘그렇지 못할 것’이라는 게 저자들의 얘기다. “어렵게 얻은 지배적 위치가 이제 (거꾸로) 우리 자신의 문명을 위협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인간의 지배는 진화 덕이고 진화는 환경과의 상호작용 결과인데, 인간의 과욕으로 환경이 파괴돼 더 이상 진화가 불가능 하다는 것이다.



 결론만 놓고 보면 꽤 익숙한 느낌이다. 기존 환경운동가들의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과정은 딴판이다. 저명한 진화 생물학자 부부인 저자들은 다짜고짜 ‘훈계’부터 하지 않는다. 운동에 앞서 과학을 얘기한다. 지구온난화로 개체군이 90% 감소한 알락딱새, DDT에 내성이 생긴 초파리 등 다양한 실례를 들고, 자연선택론·열역학법칙 등 검증된 틀을 동원한다. 그리고 끝으로 조용히 타이른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의 세계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이제 우리 자신의 방식을 바꿀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할 때”라고.



김한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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