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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밀회 중이던 클린턴도 ‘설탕 부자’ 판훌의 전화는 끊지 못했다

중앙일보 2011.09.17 00:25 종합 22면 지면보기








식품정치

매리언 테슬 지음

김정희 옮김

고려대 출판부

661쪽, 2만9000원




1996년 2월 29일 월요일 오후,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와 밀회 도중 전화를 받았다. 이날은 미국 공휴일인 대통령의 날이었다. 클린턴은 휴일에 바람을 피우던 도중 걸려온 이 귀찮은 전화를 낮 12시 42분부터 1시 4분까지 22분 동안이나 받았다. 98년 케네스 스타 특별검사가 클린턴의 르윈스키 스캔들을 조사한 결과인 ‘스타 보고서’에 나오는 내용이다.



 휴일에 미 대통령에게 전화한 인물은 알폰소 판훌. 플로리다 사탕수수의 3분의 1을 생산하던 설탕 거부였다. 민주당과 공화당 양쪽에 거액을 기부해온 인물이었다. 그는 사탕수수에 대한 세금인상 계획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클린턴에게 직접 전달했고, 결국 세금인상안은 없었던 일로 됐다.



 미 뉴욕대 교수로 식품학·영양학·보건학을 연구해온 지은이는 르윈스키가 불륜 도중 목격한 이 사소해 보이는 사례가 사실은 미국 거대식품업체들이 어떻게 정부와 의회를 움직이는지를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광고와 전문가 동원은 물론 정부와 의회를 대상으로 전방위 로비를 벌여 제도·법률·행정조치를 좌우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식정(食政) 복합체’가 이뤄지고 있는 배경으로 과잉생산을 든다. 미국의 식품 공급량을 칼로리로 환산하면 1인당 3800㎉. 보통 여성 필요량의 두 배이고 육체노동을 하는 성인 남성 필요량의 130%가 넘는다. 자연히 경쟁이 심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미 식품회사들이 소비자들에게 건강에 그리 바람직하지 않는 ‘달고 기름지고 짭짤한 음식’을 더욱 빨리, 더 많이 먹을 수 있도록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이에 대응하는 소비자 운동으로 제대로 된 식품 먹기를 제안한다. 자연적으로 생산하고 영양이 고루 잡힌 재료로 건강에 좋은 식단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말은 쉽지만 실천은 쉽지 않다. 하지만 농장과 지역사회의 직거래를 늘리고, 아이들 상대의 식품마케팅을 중단하며, 학부모들이 학교급식을 잘 감시하자는 제안은 당장에라도 실천할 수 있다. 먹는 문제의 핵심을 ‘공급’에서 ‘품질과 가치’로 패러다임을 전환하자는 것이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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