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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이 반한 한국 (34) ‘미슐랭 별 셋 셰프’ 피에르 가니에르

중앙일보 2011.09.16 04:00 Week& 7면 지면보기



없는 게 없는 모란시장서 푸근한 한국을 만났다



서울 재래시장에서 우리 고유의 식재료를 살펴보는 ‘미슐랭 스리스타 셰프’ 피에르 가니에르.







애견·식견 다 취급, 흥미로운 시장



한국에서 내 이름을 내건 레스토랑이 문을 연 것은 2008년 10월 1일이다. 그러나 한국을 처음 방문했던 건 2006년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1년에 두세 차례 한국에 들어왔고, 한국에 올 때마다 재래시장을 찾아다니며 한국 고유의 식재료를 연구했다. 나는 프랑스 요리를 만들지만, 한국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면서 한국음식을 몰라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지금 나는 그 경험을 토대로 한국 식재료를 결합한 프랑스 요리를 만들고 있다.



 나는 서울과 수도권의 이름 있는 재래시장은 얼추 다 돌아봤다. 서울의 가락시장·노량진시장 등 대형시장은 물론이고, 경동시장·광장시장, 그리고 경기도 성남에 있는 모란시장까지 가봤다. 가락시장과 노량진시장은 서울을 대표하는 식재료 시장인 만큼 프랑스에 있는 대형시장과 규모나 분위기가 비슷했다. 나에게 아주 특별한 곳은 따로 있었다. 서울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모란시장이다. 넓게 펼쳐진 노천에 형성된 모란시장에는, 정말로 없는 게 없었다.



 모란시장은 입구부터 노점상으로 가득했다. 다양한 꽃과 화분, 잡곡과 약초를 파는 상인들이 좌판을 깔아놓고 있었다. 가지런히 정리된 서울의 대형시장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좌판에 놓인 율무·녹두·수수·완두콩·검은콩 등 수많은 잡곡을 보며 쌀에 잡곡을 섞어 즐기는 한국인의 건강한 식생활을 엿볼 수 있었다. 뭐라고 하는지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동충하초·계피·오미자 등 약초를 펼쳐놓고 효능을 큰 소리로 설명하는 약초 상인도 흥미로웠다. 냄새만 맡아도 건강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시장 안쪽으로 들어가니 생선·고기·국수 등을 술과 함께 파는 포장마차 대열이 나타났다. 한낮이었는데도 한국인은 삼삼오오 모여 앉아 삶은 고기나 순대·부침개 등을 막걸리나 소주에 곁들여 먹고 있었다. 낯선 외모의 이방인이 나타나서인지, 포장마차 상인들은 나에게 이것저것 음식을 건네주었다. 바삭바삭하게 부쳐내 식감이 좋았던 녹두부침개와 살짝 밑간을 한 돼지고기, 야채로 속을 채워 부친 깻잎전, 살얼음이 떠있는 막걸리와 식혜, 한국의 팬케이크 호떡을 맛보고서는 재료가 궁금했다. 상인들은 손짓 발짓 총동원해 내게 설명을 해주었다.



 모란시장에서 나는 생전 처음 ‘식용개’를 파는 모습을 목격했다. 프랑스에서 한국인이 개고기를 즐긴다는 기사를 본 적은 있지만, 실제로 살아있는 개가 식견으로 팔리고 요리되는 모습을 목격한 것은 처음이었다. 조금은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세상의 어느 생명체이든지 간에, 죽일 때는 안타깝고 징그럽다. 개고기를 먹어본 적은 없지만, 프랑스인이 말고기를 즐기고 영국인이 개구리를 먹고 중국인이 원숭이 뇌를 먹는 것이나 한국인이 개를 먹는 것이 다를 게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김치야말로 으뜸 … 나만의 김치 내놨죠



온갖 잡곡과 약초를 비롯해 꽃과 화분, 씨앗, 해산물, 채소, 다양한 길거리 음식과 술, 골동품 그리고 애견과 식견까지. 모란시장에는 없는 게 없었다. 상인들이 권하는 돼지껍데기·곱창볶음·뻥튀기·홍어·막걸리 등을 받아먹으며 시장을 걷다 보니 한국인의 푸근한 정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한국음식이 영양학적으로나 맛에 있어 매우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대신 표현에 있어서는 세련되거나 섬세하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건강하고 푸근한 요리. 모란시장의 이미지 그대로가 한국음식에 대한 내 생각이었다. 사람에 비유하자면, 음식을 더 얹어주는 시장 아저씨 같은 음식이라고 할까.



 그러나 한식에 관한 내 생각은 편견이었다. 2년 전 한식당 ‘품’에서 맛본 음식은, 한식에 대한 내 생각을 완전히 깨뜨렸다. 전통의 맛은 유지하면서 시각적 아름다움과 형식을 더해 프랑스의 코스 요리처럼 우아한 음식을 연출했다. 맛과 건강은 물론 표현에 있어 색·조형미·배치 등을 현대적으로 해석해 품격을 높인 것이었다.



 경희궁 궁중음식 시연행사에서도 한식의 또 다른 면모를 볼 수 있었다. 한국의 궁중요리는 내가 느꼈던 투박하고 섬세함이 부족한 한식의 틀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요리 하나만으로도 아름다움을 충분히 표현하는 한국의 전통문화를 현대에 맞게 재현한다면, 이미 세계인의 음식이 된 이탈리아의 피자나 일본의 스시보다 더 경쟁력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나는 김치야말로 세계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는 경쟁력 있는 한국음식이라고 자신한다. 김치는 언뜻 단순해 보이지만 모든 요소가 극도로 정교하게 조화된 웰빙 발효음식이다. 숙성 정도에 따라 맛과 향, 식감이 천차만별로 나타난다. 이런 음식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나는 소위 ‘피에르 가니에르 배추김치’를 만들었다. 소금에 절인 배추를 레몬 껍질과 고춧가루, 발사믹 식초를 곁들여 2주일간 숙성시켰다. 이 김치를 거위 간 위에 잘게 썰어 올린 요리(사진)를, 서울은 물론이고 파리와 도쿄에 있는 내 레스토랑에서 선보였는데 반응이 상당히 좋았다. 된장·막걸리·소주·참기름 등 한국에서만 구할 수 있거나 한국산이 가장 맛있는 식재료는 앞으로도 한국음식을 알리는 가장 큰 무기가 될 것이다.



정리=손민호 기자

중앙일보·한국방문의해위원회 공동기획



피에르 가니에르(Pierre Gagnaire)



1950년 프랑스 출생. 18세에 조리계에 입문했다. 98년 레스토랑 ‘피에르 가르니에 파리’가 ‘미슐랭 스리 스타’를 받은 이래 꾸준히 ‘별점 3개’를 받아온 세계적인 요리사다. 런던·도쿄·홍콩·두바이·라스베이거스·모스크바·서울 등 전 세계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다. 프랑스 일간지 르피가로가 미슐랭 스타 셰프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최고의 셰프로 선정되는 등 프랑스 음식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했다. 2008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35층에 레스토랑을 오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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