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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유럽 위기와 ‘미카버 원칙’

중앙일보 2011.09.16 00:27 경제 8면 지면보기






매튜 디킨
한국HSBC은행장




2008년 금융위기가 남긴 상처에서 회복하는 듯 보였던 글로벌 경제가 유럽의 재정 위기로 다시금 위협받고 있다. 그리스·이탈리아·스페인과 같이 경제가 허약한 유로존 국가의 국채 수익률은 사상 최고치로 치솟았고, 전 세계 증시는 요동치고 있다. 위기의 원인은 복잡하다. 스티븐 킹 HSBC그룹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위기의 원인에 대해 “그리스는 방만한 국가 재정 운용으로 경제 위기를 자초했으며, 아일랜드는 금융 시스템을 잘못 경영했고, 포르투갈은 경제 구조가 너무 취약하며, 스페인은 비상장 은행에 온갖 악재가 숨겨져 있다”고 설명했다.



 스티븐 킹은 세계적으로 저명한 경제학자이지만, 회계사이자 은행원인 필자는 현재의 위기가 꽤나 간단한 문제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문제의 국가들이 벌어들인 소득(정확히 말하자면 걷어들인 세수)보다 많은 비용을 지출한 것이 바로 위기의 원인이다. 이는 찰스 디킨스의 자전적 소설 ‘데이비드 카퍼필드’에 등장하는 미카버라는 인물을 떠올리게 한다. 디킨스의 아버지는 금전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이로 인해 자신의 아버지가 ‘채무자 감옥’에 수감될 거라는 사실을 저자는 잘 알고 있었다. 미카버는 좋은 사람이지만 가족의 생계를 위해 필요한 만큼의 돈을 벌지 못했던 디킨스의 아버지를 풍자한 인물이다. 이 소설에는 영어권 국가에서 매우 잘 알려진 구절이 나온다.



 “연간 수입 20파운드에 지출이 19파운드 19실링 6펜스라면 결과는 행복이다. 그러나 연간 수입 20파운드에 지출이 20파운드 6펜스라면 결과는 불행이다.” 이는 일명 ‘미카버 원칙’으로 널리 알려진 명언이며, 오늘날 상황에도 딱 들어맞는다. 만약 모든 사람이 이 구절을 명심하고 산다면 불행한 사람들은 아마 지금보다 훨씬 적을 것이다.



 일부 유럽 국가들은 지금까지 22파운드, 23파운드를 지출해 왔고, 그 결과 불행이 머지않아 보인다. 그리스의 2010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비율은 147%에 이르렀으며, 이탈리아는 109%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 중 부채비율 1위인 일본에 이어 2위, 3위를 차지하고 있다. 포르투갈 역시 88%로 이들 국가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과거에는 유로존 국가들이 자신들의 화폐를 직접 발행하고, 통화 팽창을 통해 직면한 문제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물론 인플레이션은 그 자체로 다른 불행의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말이다. 유럽연합에 가입하면서 자체적인 화폐인쇄소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고, 현재 위기로 인한 결과가 무엇이든지 일정 정도의 ‘비극’은 피할 수 없다. 이미 우리는 파업과 시위 등을 목격하고 있다.



 찰스 디킨스의 소설에 등장하는 미카버처럼, 서양의 정치적 지도자들은 현 사태에 대한 해법이 갑자기 어디에선가 솟아나길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선거 이후로 어려운 결정을 미루면 미룰수록, 상황은 더욱 악화되기 마련이다. 영국 출신의 유명한 정치인 윈스턴 처칠은 민주주의가 최악의 정치 제도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포퓰리즘 정책으로 투표권자에 영합하려는 모습 때문에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이미 시도됐던 다른 모든 형태의 정치제도를 제외하고 말이다.



 현재 진행중인 금융 위기에 대한 합리적인 해법에는 고통분담이 따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측면에서 유로존 국가의 지도자들이 다른 유럽 지역으로 위기가 확산되지 않도록 대책을 논의하기 시작한 것은 정말 다행이다. 이들은 지난 7월 현재 2500억 유로인 유럽재정안정기금의 대출 상한선을 4400억 유로로 높이기로 합의하고, 발행 및 유통시장에서 국채를 매입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결국 대가를 치르게 되고, 정치인들은 여전히 선거에서 이기기를 바라기 마련이다.



매튜 디킨 한국HSBC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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