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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 선 굵은 17세… 조성진

중앙일보 2011.09.15 00:29 경제 17면 지면보기
고교 2학년 학생이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입상했다. 지난 6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전해진 소식이다. 피아니스트 조성진(17)은 앞으로 한동안 깨지지 않을 기록을 남겼다. 올해로 14회째인 이 대회는 ‘한국 특별 무대’를 방불케 했다. 피아노ㆍ성악ㆍ바이올린 부문에서 총 다섯 명이 입상했고 화려한 성적을 냈다. 피아니스트 손열음(25)은 1974년 정명훈의 2위 입상 기록에 함께 이름을 올렸다. 피아노 부문의 결선 진출자 다섯 명 중 가장 어렸던 조성진은 3위에 입상하면서 고국을 놀라게 했다. 조성진의 놀라운 소식은 이것이 끝이 아닐 터다. 세계 최고 수준의 콩쿠르를 경험한 그는 “이번 대회 이후 내 음악관이 훨씬 뚜렷해졌다. 무엇보다 스스로를 정확하게 알게 됐다”고 했다. 지금껏 빠르게 성장했던 그가 예고하는 발전은 두렵기까지 하다. 한 연주자와 음악적 성장을 함께하는 경험은 특별하다. 신동ㆍ천재였던 이가 음악가로 깊게 뿌리내리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인내심 많은 청중의 특권이다. 그 기쁨을 아는 이들에게 조성진을 권한다. 잘 치는 피아니스트, 좋은 연주자는 많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조성진을 지켜봐야 하는 이유는 여러가지다.



글= 김호정 기자 , 사진=서울시향 제공, 차이콥스키 콩쿠르 제공













조성진은 조금씩 입소문을 탔다. 열 살 즈음부터 국내 초등학생 음악 콩쿠르에서 1위를 휩쓸었다. 피아노 치는 학생들에게, 교사들에게, 그리고 관심 많은 청중에게 이름이 전해졌다.



그러나 테크닉이 완성된 꼬마 피아니스트가 넘치는 시대다. 능글맞은 감정 표현을 해내는 어린 피아니스트도 별로 특별하지 않다. 빨리, 정확히, 어른스럽게 피아노를 치는 아이는 많이 나타났다. 이제 더 이상 뭘 바랄 수 있을까.



조성진은 여기에 답을 들고 나타났다. 2008년 14세에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6회 쇼팽 국제 청소년 콩쿠르에서 우승했을 때만 해도 ‘또래에 비해 잘 치는 수준’ 이상의 확신은 크지 않았다.



진정한 승전보는 일본에서 전했다. 그 이듬해 하마마쓰(濱松) 국제 콩쿠르는 30세 미만의 어른들과 함께 겨룬 무대였다. 동영상으로 실시간 전해진 무대에 관심이 집중됐다. ‘어리지만 잘 치는’ 수준이 아니었다. 음악에 대한 생각이 분명했다. 선이 굵고 작품 전체를 보는 눈이 있었다. 열다섯 살이던 그는 이 콩쿠르 사상 최연소, 최초 동양인 우승을 기록하고 돌아왔다.



지난 6월 말 러시아 모스크바에서도 이름값을 했다.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가 1958년 시작된 이래 한국의 ‘고등학생’이 이 대회에 입상한 적은 없었다.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러시아의 ‘전설’이 된 피아니스트 그리고리 소콜로프가 16세에 1위에 오른 것이 최연소 기록이다. 열일곱 살에 3위에 오른 조성진은 이렇게 또 한 계단을 뛰어넘었다.



#피아노와 조성진













조성진의 장점은 ‘본능’이다. 그는 무대 위와 아래에서 유난히 다른 피아니스트다. 평상시엔 평범하고 조용한 소년이다. 내성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건반을 잡으면 무섭게 바뀐다. 어디에 있었는지 모를 ‘끼’다.



2009년 11월 하마마쓰 콩쿠르에서 조성진은 베토벤의 ‘열정’ 소나타를 연주했다. 보통 피아니스트들보다 템포가 훨씬 빠르다. 보통 10분 이상 걸리는 1악장을 9분 정도로 단축시켰다. 어찌 보면 위험한 선택이다. 점수를 매기는 콩쿠르에서 자의적 해석은 감점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콩쿠르 우승 직후 한국 독주회에서 만났던 조성진은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다. 당시 상황에서 떠오른 직감으로 연주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한국에서 같은 곡을 연주했는데, 콩쿠르 당시와는 또 다른 템포와 흐름으로 곡을 이끌어갔다. 머릿속에 수많은 음악의 길이 들어 있는 셈이다. 그의 음악적 사고는 콩쿠르의 ‘틀’을 벗어나 있다.



열일곱 살의 소년이 거대한 작품을 해치우는 속도를 보면 어지러울 지경이다. 특히 하마마쓰 우승 이후의 행보가 놀라웠다. 1년 동안 12번 넘게 무대에 섰는데, 대부분의 연주 곡목이 전혀 겹치지 않았다. 거의 모든 곡을 새로 익혀 연주했다는 뜻이다. 특히 차이콥스키 협주곡 1번은 악보를 처음 읽고부터 무대에 서기까지 고작 두 달이 걸렸다.



비결이 있을까. “특별히 악보를 빨리 보는 편도 아니고, 연습 시간이 또래보다 훨씬 길지도 않다. 친구들을 보면 8시간, 12시간 연습하던데 나는 그렇게 못 했다.”



그는 그저 음악이 좋을 뿐이다. 무엇보다 큰 장점은 집중력이다. “연습할 때는 집중한다. 파묻혀 있을 땐 주위에서 아무리 시끄럽게 해도 들리지 않는다.”



다음으로 특별한 재능은 몰입이다. “연습하지 않을 때도 음악과 관련된 책과 자료를 뒤진다. 음악 책이 많은 곳에 가면 몇 시간이고 틀어박힌다.” ‘만들어진 신동’이 음악에 푹 빠져 있는 조성진을 따라갈 수 없는 이유다.



#피아노를 뺀 조성진



조성진은 일곱 살에 바이올린을 시작했다. 피아노보다 1년 늦었을 때다. 같은 해 동네 콩쿠르에 나갔는데, 바이올린으로는 장려상을 탔다. 욕심껏 피아노 부문에도 도전했지만 탈락했다.



“서서 하는 악기가 힘들어 피아노를 선택했다”고 농담을 섞어 말하는 조성진은 지금도 바이올린에 대한 애정이 깊다. “인간적이고 호소력 있는 사운드가 좋다”며 바이올리니스트의 공연에도 자주 찾아간다.



이뿐만 아니라 실내악·오케스트라 등의 공연에도 청중으로 자주 등장한다. 한 가지 악기와 장르에 매달리지 않는 모습은 그가 오래 음악을 숙성시킬 것이라는 좋은 징조다.



“차이콥스키 콩쿠르가 끝나고 취미로 바이올린을 다시 해 볼까 생각하고 있다. 언젠가는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을 무대에서 연주하는 게 또 다른 꿈이기 때문이다.”



피아니스트로서 조성진은 “10년 안에 40곡 넘는 협주곡을 마스터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언젠가 청중은 피아노와 바이올린 협주곡을 한 무대에서 연주하는 ‘만능 음악가’를 얻게 될지도 모른다.



#예측 불가능한 성장



이제 남은 관심사는 하나다. 조성진은 얼마나 더 클까.



“차이콥스키 콩쿠르는 내 경력에서 가장 큰 무대였다. 본선 2차 무대부터는 바빠졌기 때문에 못했지만 1차 무대에 올라온 30여 명의 참가자 연주를 모두 지켜봤다. ‘세계 최고’라 불리는 수준을 정확히 봤다. 그리고 내 장점과 단점을 알게 됐다.”



그는 음악관이 좀 더 뚜렷해졌다고 했다. 자신의 소리가 슈베르트·쇼팽 등 낭만 시대의 화려한 음악에 어울린다는 점도 알게 됐다고 했다.



서울예고 2학년에 재학 중인 조성진은 좀 더 넓은 세상으로 갈 참이다. “곧 유학을 떠날 생각”이라고 했다. “어디가 됐든 많이 보고 들을 생각에 설렌다. 한국에선 쉽게 만날 수 없었던 음악가들의 연주를 실컷 들을 일이 가장 기대된다.”



어린 피아니스트에게만 허락될 ‘음악적 쇼크’가 세계 도처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다. 청중도 마음을 단단히 먹을 일이다. 지금껏 우리를 놀라게 했던 조성진의 음악이 상상하지 못한 모습으로 성장할 테니 말이다.

조성진이 걸어온 길



-1994년 서울 생

-2005년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금호영재콘서트로 데뷔

-2008년 모스크바 쇼팽 청소년 콩쿠르 1위

-2009년 하마마쓰 국제 콩쿠르 1위, 지휘자 로린 마젤과 협연

-2010년 NHK심포니, 나고야 필하모닉 등과 협연, 예원학교 졸업, 서울예고 입학

-2011년 제14회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 3위

시시콜콜 야놉스키와 한국 기대주



김선욱 이어 두 번째로, 베를린 방송 교향악단과 협연




지휘자 마렉 야놉스키(72)는 2009년 베를린 방송 교향악단과 함께 내한했다. 이때 피아니스트 김선욱(23)과 처음 협연했다. 베를린의 ‘파워 지휘자’ 야놉스키는 12월 1일 김선욱을 베를린 필하모니홀에 데뷔시킨다. 베를린 방송 교향악단의 정기 연주회에 초청한 것이다.



야놉스키는 제왕적 스타일의 지휘자로 분류된다. 김선욱과의 베토벤 4번 협연 이후 베를린으로 초청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덕분에 김선욱은 세계적 명성의 공연장에 첫발을 내딛게 됐다.



다음 달 조성진도 야놉스키와 협연한다. 베토벤의 다섯 번째 피아노 협주곡 ‘황제’다. 조성진이 2009년 하마마쓰 콩쿠르 결선 무대에서 연주했던 작품이다. 이렇게 해서 베를린 방송 교향악단과 야놉스키는 한국의 대표적 기대주로 분류되는 두 피아니스트를 잇따라 만나게 됐다.



베를린 방송 교향악단은 2009년 단정하고 복고적인 사운드를 들려줬다. 야놉스키의 베토벤 3번 교향곡 ‘영웅’은 고전적 오케스트라 사운드를 그리워하는 청중을 만족시켰다.



이번 내한에서는 브람스 교향곡 3번을 골랐다. 두터운 소리의 독일 음악을 정통 요리법으로 차려낼 기세다.



또한 베토벤의 가장 인기 있는 피아노 협주곡을 골라 든 조성진과의 만남에서 정통 사운드가 어떻게 꽃필지가 관심사다.



공연은 다음 달 6일 오후 8시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다. 5일 오후 7시 30분 대전 문화예술의전당 아트홀에서 같은 프로그램이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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