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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침묵의 소리

중앙일보 2011.09.15 00:22 종합 33면 지면보기






주철환
jTBC 편성본부장




집을 나서는 장면은 어제나 오늘이나 비슷하다. 가방을 챙기고 모자를 쓴다. 휴대전화기에 헤드폰을 연결한 후 재생을 누른다. 노래가 귓속 가득 흘러 들어온다. 총 635곡이 수록되어 있는데 ‘흑산도아가씨’부터 ‘피아노맨’까지 그야말로 ‘뮤직버라이어티’다. 선곡의 기준을 묻는다면? 인생의 고비마다 위로를 안겨준 음악들이라고나 할까.



 회사까지 걸어서 25분. 발은 땅에 닿아 있지만 길은 추억과 맞닿아 있다. 미술관을 지나고 극장을 지나고 신문사, 예배당, 학교를 지난다. 자유를 얻은 감각기관은 제각각이다. 눈은 목적지를 향하지만 귀는 ‘그때 그곳’을 서성인다. 기억은 힘이 좋아서 심지어 날씨·냄새까지도 토해 낸다.



 노래는 캔자스의 ‘이 풍진 세상(Dust in the wind)’. 대학생 프로 ‘퀴즈아카데미’에서 예고편 배경으로 썼던 노래다. ‘어린 왕자들’이라는 팀을 모델로 찬바람 부는 대학로에서 아침 내내 찍었다. 전날의 술기운에 바닥이 흔들렸다. 지금 두 ‘왕자님’ 중 하나는 중국에서 사업을, 하나는 로펌에서 변호사로 일한다. 연출자·출연자로 만났지만 지금은 아름드리 형제다.



 오늘따라 가사가 또렷이 들린다. “nothing last forever but the earth and sky(천지 외에는 영원한 게 없다)” 땅을 사랑으로, 하늘을 희망으로 대입해 본다. 가사 바꾸기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이어온 취미생활. 모든 게 눈앞에서 사라져도 사랑과 희망은 남는다. 감옥에서도 그것들은 빼앗을 수 없기 때문에.



 음악은 계속된다. 이번엔 ‘침묵의 소리(Sound of silence)’. 며칠 전 9·11테러 10주기에 뉴욕 맨해튼의 그라운드제로에서 폴 사이먼이 기타를 연주하며 부르던 노래. 그래선지 멜로디보다 노랫말이 꽂힌다. 시작조차 예사롭지 않다. “Hello darkness, my old friend(어둠이여 내 오랜 친구여)” 어둠이 빛을 몰아내고 빛이 어둠을 쫓아내는 것 같지만 해석하기 나름이다. 어둠은 빛을 위해 장막이 되어 준다. 빛은 어둠을 쉬게 만든다. 고난이 행복으로 가는 다리인 것과 같다.



 무심히 들었는데 엄청난 게 숨어 있다. “Silence like a cancer grows(침묵은 암처럼 자란다)”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 것은 죽음으로 향하는 길이다. “People talking without speaking(말하지 않고 주절대는 사람들)” “People hearing without listening(경청하지 않고 흘려듣는 사람들)”. 그리고 마침내 이런 탄식도 있다. “No one disturb the sound of silence(아무도 감히 침묵의 소리를 깨부수지 않는다)”



 폴 사이먼은 명상가였구나. 세상에 말 같지 않은 말이 얼마나 떠돌고 있는가. 침묵의 가치는 분명 존재하지만 해야 할 말조차 꺼리는 얍삽한 자들은 또 얼마나 우글대는가.



 여섯 곡을 들으니 회사가 보인다. 교훈을 추스른다. 할 말은 오늘 바로 하자. 비난의 말은 삼가고 칭찬의 말은 아끼지 말자. 그리고 나를 비판하는 ‘어둠의 친구’에게 감사하자. 그가 예리하게 지적해 주는 나의 단점에 귀를 기울이자.



주철환 jTBC 편성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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