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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안철수 현상’ 읽는 법

중앙일보 2011.09.15 00:11 종합 35면 지면보기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안철수 서울대 교수의 열풍이 드세다. 서울시장과 대통령 예상 후보로서의 지지도가 고공행진 중이다. 갑자기 나타난 안철수 현상의 핵심은 무엇보다 잠재돼 있던 정치불만, 현실 비판 의식, 또는 대안 모색의 단기적인 분출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 ‘행동 이전의 여론’ ‘선택 이전의 의견’ 차원에 머물고 있지만, 한국정치와 사회의 변화를 향한 집합적 열망의 표현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물론 안철수 현상은 SNS 또는 소셜 미디어를 한국사회가 어떻게 이해하고 수용할 것이냐의 문제와도 직결된다. 트위터를 포함한 소셜 미디어는, 매개라는 뜻을 갖는 미디어의 본래 기능을 개인들이 독립적이며 직접적으로 수행함으로써, 전통적 매개 단계를 거치지 않는 소통혁명, 미디어혁명을 함의(含意)한다. 만약 기존의 거대 정당과 언론들이 이들을 계속 ‘좌파’ ‘소수’ ‘일시적 거품’이라고 규정한다면 한국사회에서의 문제 파악, 대안 제시, 대화와 소통은 계속 실패하고 말 것이다.



 가치와 행태의 측면에서 볼 때 안철수 현상은 ‘비정치적 정치’가 기존의 ‘정치적 정치’를 위협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반복되는 정쟁과 삶의 문제 해결에 실패하고 있는 전통적 정치에 식상한 시민적 염증이 MB의 실정(失政)·사사(私事)주의에 대한 비판의식과 접맥되면서 급격한 상승효과를 초래하고 있다. 전자가 안철수 현상의 장기적 요인이라면 후자는 단기적 요인에 해당된다. 그런 점에서 안철수는 MB의 정면교사인 동시에 반면교사라고 할 수 있다. 성공과 성취를 표상하는 점에선 정면교사이지만 위로와 소통, 바른 성공과 공정성을 대표한다는 점에선 반면교사인 것이다.



 안철수 현상의 또 다른 중대한 현실적인 정치적 요인은 MB정부의 실정, 박근혜 독주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진보개혁세력의 대안(代案) 부재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보수건 진보건 야당이 이토록 오래 집권세력에 대해 대체리더십의 부재에 직면한 적은 없었다. 때문에 박근혜 이외의 잠재적 지도자들을 현저히 왜소화시키고 있는 안철수 현상에 비추어 만약 진보개혁세력이 ‘안철수 요인’이 사라진 상황에서도 여전히 대체리더십 창출에 실패한다면 역설적으로 이 현상의 과실은 보수세력에, 피해는 진보개혁세력에 귀결될지 모른다.



 모든 걸 통틀어 안철수 현상이 던지는 가장 심대한 문제는, 정치영역 밖에서의 성취와 가치를 정치와 공공 영역에서 직접 추구하는 이른바 정치의 외부 투입 효과가 아닐 수 없다. 기업·법조·환경·교육·방송·과학·IT 분야에서의 최고의 성취를 발판으로 정치 진입을 시도했던 선례들은 그동안 대부분 실패하였다. 정주영, 문국현, 이회창, 정운찬, 엄기영, 이수성, 정근모, 진대제…의 ‘선거’ 또는 ‘선출직 도전’ 실패 사례는 민주주의에서 정치 밖에서 정치로의 외부 투입이 용이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특히 선거가 임박한 시점의 진입 시도는 철저히 실패했다. 국회의원과 수도의 시장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MB정부 내내 격렬한 공공성 논란에 직면했던 경험은 무엇을 뜻하는가?



 누구든 국가나 시정의 경영을 희구한다면 관전자나 비평가를 넘어 집행자와 당사자로 선출되어 공공영역에서의 바른 성공을 증명해야 할 책임윤리에 직면한다. 민주국가에서 공적 경쟁 없이 선택되는 지도자와 가치, 배분되는 자원과 예산은 없기 때문이다. 정치가 공공영역의 핵심인 이유도 거기에 있다. 말의 위로와 비판을 넘는 실질적 혜택과 효과의 추구, 즉 안철수 현상이 촉발한 희망과 가치의 공동체 차원의 궁극적 실현 역시 정치를 통해 가능한 것이다.



 만약 안 교수가 차기나 차차기의 대통령 또는 다른 선출직 공직을 추구한다면 지금 교수를 그만두고 준비해도 너무 늦다. 한국 정도의 세계 10위권 규모의 민주국가 어디에서도 1년 전까지 대학교수였던 사람이, 공적 선출 및 집행 경험이 전혀 없이 곧바로 공동체 최고 공직에 선출돼 국가 업무를 성공적으로 처리하고 국가를 발전시킨 사례는 찾기 어렵다. 한국사회는 안철수 현상이 던지는 과제를 어떻게 민주적으로 정치화하고 제도화할 것인가? 한 사람으로 응축되어 나타난 집합적 열망을 실현하기 위해 차분히 지혜를 모을 때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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