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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 세상을 말하다] 嘉俳 가배

중앙일보 2011.09.14 09:39
“갠 날씨에 시골 마을 즐거워 떠들썩하네/ 가을 동산의 풍미는 과시할 만하구나/ 지붕엔 넝쿨 말라서 박통이 드러났고/ 언덕의 병든 잎새 사이사이 밤송이가 떡 벌어졌네/ 술잔만 부딪치며 좋은 잔치 맞이하고/ 시구는 전혀 없어도 이웃집에 모이는구나/ 슬퍼라, 늙고 병들어 밤 뱃놀이 못하니/ 달빛 아래 금빛 물결을 구경 못해 아쉽구나.”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이 추석날 술잔을 나누며 지은 ‘추석에 시골 마을의 풍속을 기록하다(秋夕鄕村紀俗)’라는 제목의 한시(漢詩)다. 명절을 맞아 북적거리는 시골의 모습이 정겹다.



음력 8월 보름을 한국은 추석(秋夕), 중국은 중추절(仲秋節)이라 부른다. 중추절은 맹추(孟秋)·중추(仲秋)·계추(季秋)로 나뉜 가을의 한가운데 있는 명절이란 뜻이다. 우리말로는 한가위다.



‘7월 기망(旣望, 16일)부터 왕녀(王女) 두 사람이 육부(六部)를 반으로 나눠 각기 여자들을 거느리고 삼베를 짜기 시작했다. 8월 보름이 되면 성적을 따져 지는 편이 음식을 장만해 이긴 편에 사례하고 가무(歌舞)와 백 가지 놀이를 즐기니, 이를 ‘한가위[嘉俳]’라고 했다’.



안정복(安鼎福)의 『동사강목(東史綱目)』에 보이는 한가위의 유래다. 한가위의 이두(吏讀)식 표현이 가배(嘉俳)란 설명이다. 중국의 옛 글에 가배란 용례는 보이지 않는다. 한자어는 한국어 어휘 중 70~80%를 차지하는 반면, 우리말이 한자에 영향을 끼친 사례는 찾기 힘들다. 국어학자 이기문은 ‘삼(參)’이 우리말 ‘심’에서 유래됐고, 김완진은 ‘웅(熊)’과 ‘기(鶀)’가 각각 ‘곰’과 ‘기러기’에서 차용되었을 가능성을 제시했지만 둘 다 문헌상 근거는 없다. 2005년 우리말 ‘서울’의 중국어 표기를 한성(漢城)에서 ‘서우얼(首爾)’로 바꿨다. 중국이 받아들인 사실상 첫 한국식 한자다.



해마다 음력 8월 15일이 돌아오면 한국인들은 반달 모양의 송편을, 중국인들은 보름달 모양의 월병(月餠)을 먹는다. 한·중 양국의 풍속에는 이렇듯 공통점과 차이점이 공존한다. 같은 농경사회였지만 국민들의 심성(心性)이 다르기 때문이다. 문화에는 우열이 없다. 차이와 교류가 있을 뿐이다. 언어도 마찬가지다. 제2, 제3의 가배와 서우얼을 만들어 교류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xiao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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